I have no Ikea!-공룡을 찾아서,
I have no idea!
I have no ikea!
아주 오래전 핀란드 디자인 산책인가, 하는 책을 인상깊게 보았다.
핀란드의 자연이 낳은 디자인, 특히 빛, 빙하, 자작 나무처럼, 지천으로 널린 것들이 핀란드의 미감에 영향을 미쳤다는 골자가 인상적이었다.
스웨덴도 북유럽국가다.
춥고, 겨울이 길고, 어둡고, 백야에, 자원이 많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에, 실업 등등,
그나라는 아바, 그리고 아이케아,
아바도, 이케아도, 노벨상도, 칼라르손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도 다 스웨덴이 낳은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우리 동네에 이케아 매장에 생겼다길래 벼르고 벼르다가 가봤다.
일단 처음 느낀 점, 쇼핑을 많이 해봐야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고 싼 물건을 찾아낼 수 있으며 자신의 취향을 알 수 있다.
두번째, 우리 집이 작으니, 더이상 물건을 들이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얼마든 살 수 있으니, 굳이 꾸역꾸역 사들고 갈 마음이 없었다.
세상은 넓고, 물건은 쏟아진다. 입구에는 아주 싼 가격으로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판다. 나도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무려 700원에 사먹었다. 그 바람에 신용카드를 잃어버려 나중에 고생하긴 했지만, ㅠㅠ
입구에는 이케아의 유명한 상품들을 수북하게 쌓아두고 판다. 둘러보다 보니, 여기 물건은 자취방, 30대 초반의 신혼 부부, 유학생 등등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물건같기도 하다. 하나나 두개가 있어야 멋진 거지. 이케아로, 도배하면, 글쎄...
이케아는 조명이 유명하다. 조명을 직접 보고 싶었고, 대체 무슨 조화로 이런 값이 가능한지 늘 궁급했다. 오늘 가져오고 싶었던 것은 파도라는 둥근 등이었다. 벽에 붙이는 등도 사고 싶고,
키다리 등도 사고 싶다. 집안을 환하게 밝히고 싶다. 그릇도 보고, 그냥 하얀 색이다. 그렇게 이쁘지는 않지만, 굉장히 싸다. 몇개 마음에 드는 것도 있었지만, 그만 두기로 한다.
이케아의 자랑이라는 쇼룸을 보러 다녔다.
물론 이뻤지만 생각보다 별로였다. 그게 너무 기뻤다. 기대값이 높았기 때문이다. ㅎㅎ, 얼마전 갔던 리바트는 기대값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이케아가 들어오면서 국내 가구 업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또한 수많은 유아 방이 다 이케아 물건들로 가득했음을 알겠다. 나는 급식도, 프랜차이즈도, 우려스럽다. 개성이 사라지니까,
모든 아이들 방에 구름 조명, 원숭이 인형, 말 모양 그림, 흰 가구, .........
나는 늘 남들과 같아지고 싶지만, 동시에 남과 다르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든다.
거실, 안방, 부엌, 욕실, 서재, 게임방, 자녀방, 유아방 각각의 테마를 중심으로 꾸민 방들을 둘러본다.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다.
수납 가구, 부엌, 의자, 소파, 욕실, 그릇, 수납, 등등으로 나뉘어진. 물건들을 본다.
난 처음에 백화점 갈 때마다 호흡 곤란으로 고생했다. 공기가 답답해서, 잠시도 견디기 힘들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때의 낯가림을 나는 또 이케아에서 한다.
백화점에서 겪었던 낯가림은, 나처럼 촌스러운 애는 이런 곳이랑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이렇게 비싼 물건을 살 돈이 없다는 그런 자격지심이었지.
이케아에서 겪는 낯가림은, 어쩜 이리도 물건이 많을까, 나 역시 악착같이 남들과 똑같은 물건을 따라사면서, 행복과 만족감을 느껴야 할까, 공감이 반드시 같은 물건을 매개로 해야 하나, 어쩜 이리도 쓰레기가 많을까, 포장은 어찌 저리도, 과도하고, 무슨 물건들이 저리 끝도 없이 나오나,,,,, 하는 무력감이었다.
계속 새로운 물건을 보고, 찾고, 가격을 비교하고, 사재고, 또 버리고 다시 쇼핑에 나서고, 그런 강박이 덮칠까 하는 무력감이었다.
아니 내게 겪은 낯가림은 공룡이었다.
이케아는 분명 공룡이었다.
이케아는 거대한 서울이란 공룡으로 들어왔다.
서울이 커지고 또 커지고 또 커져서, 하남과 위례, 구리를 접하는데 그 접점에 간신히 들어온 공룡이었다.
sns에서 나온 듯한, 남녀, 입성과 분위기가 근사한 중년 남녀들이 까페에서 음식을 시켜 먹는다. 냉동 연어, 냉동 돈까스, 냉동 야채로 만든 프라스틱같은 음식을 프라스틱에 담아, 프라스틱 식탁과 프라스틱 조명 아래서 먹는다.
공룡처럼 커다란 몰 안에서,
밖은 공룡같은 지산과, 신사옥들이 그득한 비즈 벨리였고, 공룡처럼 서울의 끝을 점령한 대규모 신축 아파트 단지가 누워있었다.
한데 이케아가 선 그곳은 사실은 공룡 유적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ㅎㅎ,
17센티 미터 지름의 파도 조명을 사고 싶었으나, 품절이었다. 대신 방수 가방과 작은 그릇 2개를 골랐다.
사우나 가거나 수영장 갈 때 쓰고 싶었다.
종지는, 남편에게 간식을 줄때 유용하리. 2개 3900원이었는데 그것도 한참 고민했다.
사야할까, 남편의 간식 그릇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쓰는 건데, 그럼 적어도 수백번 쓸건데, 그럴 수록, 정말 좋은 거, 최고로 마음에 드는 걸로 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내가 참 마음에 든다.
그 유명하다던, 발닦개는, 형편없었다. 쓰레기 같았다. 그 유명하다던 행주도, 지퍼백도, 내 보기엔 그저그랬다.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라는데, 내겐 아니었다. 그게 참 좋았다. 무조건 따라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리집이 좁아서, 더 이상 채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한데, 계산하려고 계산대 앞에서 나는 신용카드를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세상에,추측컨대,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카드를 챙기지 않은 것 같다. 푸드 코트에도 고객 서비스 센터에도, 없다. 남편에게 전화했더니 웃기만 한다. 결국 카카오 페이로, 결제하고 ㅠㅠ, 새로 열었다는 지하 이마트 글로벌 마켓인가에 가본다. 입구에 두리안이 있었다. 쩍 벌어져 흰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렇게 냄새가 심하지 않았고 거의 반값이나 쌌다. 살까말까 고민하는데, 안전 요원이 나더러 사지 말라고 한다. 30대의 남자 , 굉장히 호기심 많고 다정한 남자다. 자신도 자주 들여다 봤는데, 과실이 갈라진 걸 보니, 상태가 좋지 않은 거 같다고, 난 반대로 생각했는데, 그에게 "이마트에 이를 겁니다. ㅎㅎ, 못사게 한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지나간다.
두리안도 공룡, ㅎㅎ
내가 사랑하는 공룡은 아바다.
내가 사랑하는 공룡은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며
내가 사랑하는 공룡은 칼 라르손이다.
물론 이케아도 내가 사랑하는 공룡이다. 노란 공룡, 조립식 가구, 최고의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극강의 가성비로도, 예술을 집안에 들이게 하는,
돌아오는 길에 나는 기어이, 버스를 잘 못탔다 ㅠㅠ, 상일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너무나 친절한 기사 아저씨는 상일동역에서 내려 버스 정류장까지 가르쳐줬다. 한밤 중 나는 공룡처럼 천천히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마치 시골처럼, 5-6도쯤 추운 밤 공기 속에서, 깜깜한 하늘 아래서, 차오른 달 아래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고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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