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호의 무대가 그렇게 뛰어나다고 해서 언젠가 꼭 한번 보고 싶었다.
그의 옷도, 그의 영화 의상이며 대단했으니까,
그의 옷을 사랑하는 동생 덕분에
그의 옷을 사랑하는 내 친구 덕분에
나도 구호 옷 입어봤다.
헐렁하고 편해서 도시의 수도승 같은 옷
초록, 자주, 남색, 정구호의 색들,
아침에 수업하고, 2시간 동안, 필라테스를 한후 서둘러, 전철을 타고 갔다
한강진역, 2번 출구, 420번 타고, 남산 반얀 트리 앞 국립 극장 해오름 도착하니. 이미 15분전, 현장 발매하면, 반값일 줄 알고, 갔으나 그대로다. 그래도, 3만원에 2층 좌석, 1층이면 더 좋았겠지만, 3층보다 훨씬 낫다.
표를 끊으려는 데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늦을까 조바심 치는데 티케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뒷사람이 화를 냈다. 그러게 나도 조심했으나 매표원 아가씨가 너무나 친절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싸게 구매하게 해주고 싶어서, 여러번 알아봐주고, 최선을 다했다. 결국, 나는 20% 싸게 살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뒷사람에게도, 피해를 줬다. 미안합니다. 두 분 다 감사합니다.
공중에 바위가 떠있고, 흰 저고리에 회색 스란 치마를 입은 무용수가 천천히 춤을 춘다. 군데군데 사람들이 잔다.
발레는 꽤 많이 봤지만, 현대 무용은 처음 본다. 언젠가, 더 원을 꼭 보고 싶다. 연인이었던 이정윤과, 김주원이 뜨겁게 사랑하는 모습을, 그 에로틱한 모습을 꼭 보고 싶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배우들, 팔 선을 유심히 본다. 화양영화서 장만옥의 팔 본 후부터다.
남자 무용수들은 와이드 팬츠에 상체는 벗고, 나왔다.
초록 A라인 드레스, 화인색 A라인 드레스, 여인들은 검정 주름 드레스 위에 흰 주름 드레스를 덧입고,
막대기를 들고 춤을 춘다.
클라이 맥스 쯤에는 사물놀이와, 장구춤, 부채춤, 탈춤 등을 새롭게 해석한 춤들이 나왔는데, 너무너무 감동적이고 아름다웠고, 시적이었다.
마지막 장면은 검은 옷 위에 사각형의 천같은 것을 목에 쓴 무용수들이 팔을 쫙 펴고 하늘을 향해 몸을 길게 늘이는데, 뭐랄까, 하나하나가 공중에 뜬 거 같고, 십자가 같아서 마음이 뜨거웠다.
춤을 사랑하는 이들, 춤이 인생인 이들,
그들의 삶은 또 얼마나 고달플까,
그들의 몸은 발레리나와 달랐다. 고행하는 느낌이 없었고 인간적이었으며, 건강하고,
무용수들을 생각하며 공연을 봤다.
공연 마치고 나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오래 박수쳤고, 소리를 질렀으며 손을 크게 흔들어주었다. 그들이 기뻐할 수 있기를 , 그들이 행복할 수 있기를
나 역시 내가 하는 일이 시간과 함께 사라져가는 일이라, 몸으로 하는 일이라, 내게 보내는 환호와 응원이기도 하다. 나의 남편에게 보내는 찬사와 찬미이기도 하다.
공연을 마치고, 나오니, 로비에 멋쟁이들로 가득하다. 공연 들어가기 전 문훈숙 단장님을 스치듯 보고 목례를 나누었는데,
그녀는 얼마나 고독할까, 그런 생각 또 했다. 고독한 사람은 늘 내 눈길을 끈다. 발레나, 뮤지컬, 연극, 클래식 공연의 관객과는 또 다른 멋쟁이들이다.
그 중 정구호감독을 봤고, 사람들이 그와 사진 찍으려고 기다렸다. 그는 일명 똥싼 바지, 그러니까 배기바지에 , 블랙 일색으로 입었고 겨자색의 안경을 쓰고 있었으며 검은 가방을 메고 있었다. 생각보다 키가 크고, 얼굴이 아주 입체적이었다. 쌍거플 수술 하신 듯, 그에게 영광이라고 했고 사진을 찍었다. 기다렸다가 다시 사진 찍고, 건강하시라고 인사했다.
나는 푸른 드레스를 입고, 머리도 감지 않고, 반창고 붙인 발등이 보이는 푸른 구두를 신고 있었다. 짙은 자주색 꽃 가방을 들고서,
사랑하는 그와 둘이 앉았던 곳이다. 그와 남산을 걸었다. 그는 잊었겠지.
나오자 마자, 건너편에도 이쪽에도 420이 왔고, 사람이 많았지만, 타고 왔다. 이런 만원 버스 타본 것도 오랜만, 뒷문으로 탔는데, 아주 멋쟁이 중년 여인이 연신 내게 손 조심하라고 이른다. 그게 다정해서 좋다. 그녀와 공연 이야기를 하고, 한강진 역에서 내려서, 그릇 가게 또 갈까 하다가, 배고파서, 성당가야 해서, 전철 타고 곧바로 왔다.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이 한강진역에서 나온다. 아마 주말이라, 여름을, 서울을, 젊음을, 한남동을 즐기러 나들이 하러 온 듯, 그들과 엇갈려 나는 집으로 일찌감치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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