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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주는 요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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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맛 어릴 적 엄마는 멸치를 먹이려 애쓰셨다. 뼈째 먹는 생선이니 칼슘이 많아서 뼈를 튼튼하게 하고 머리가 좋아진다셨다.    마른 멸치의 대가리를 따고 내장을 꺼낸 후 살짝 볶아 조리셨고, 때로는 국물을 우려내고 난 맹탕인 멸치도 먹으라셨다.  가끔 맨 멸치를 고추장 찍어 안주로 잘 먹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중 어른이 되어 술자리를 할 때에는  언젠가 남쪽 어느 고장에선가, 장어탕을 먹을 때 반찬으로 나온 뼈 튀김을 먹었더랬다. 바삭바삭 고소한 게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갈 기세였다.  바닷가 출신인 남편은 아나고 회를 최고로 쳤다. 꼬들꼬들 씹어먹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고 했다. 역시 뼈째 씹어먹는 음식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어머니는 마당에 연탄불을 피우고 오래도록 소뼈를 고아서 곰국을 끓이신다. ..
6월은 초록, 6월은 동그란 매실이 데구르르르 굴러가며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따가운 햇살 아래 나무 그늘로 걸어가며 바람 맞을 때 온전한 행복감을 맛본다. 이걸로 충분하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은 빛나고, 나뭇잎들은 가늘게 뒤챈다. 흙과 풀은 자기만의  향을 뿜어올리고 , 나는그저  내 발로 걸어간다.  너도 이런 기쁨을 누렸는지. 올해 유월에도 역시 ,  엄마는 매일 매일 이런 지복을 누린다. 한 여름 오기 전, 습기가 몰려 오기전, 태풍과 장마,  폭염이 닥쳐 오기 전, 나는 6월의 초록을 한껏 먹는다. 나날이 무성해지는 나무를 바라보고, 장터에 나오기 시작한 완두콩과, 매실을 아이의 눈으로 쳐다본다.  눈을 감는다. 이대로 눈을 감아도 괜찮지 싶다.  눈을 다시 떴더니, 오이가 보이더라, 가늘고 짤막한 게  맛있..
꿈처럼, 꿀처럼, 굴처럼 누군가  우리 나라의 장점을 말해보라 했다 치자, 모두들, 앞다퉈, 초고속 인터넷, 대중 교통,빠른 행정 처리, 인천 공항 등을 말하겠지. 한데 엄마는 상대방을 봐가며  우리나라를 다르게 자랑할 테야.  만일 그가 미식가에다 해산물을 즐긴다면, 무조건 굴을 손꼽겠어. 너 말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고급 식당에서 굴이 얼마나 비싼 값으로 팔리는 지 아니?각굴이라고, 굴 껍질 채  큰 접시에 5-6개 담아서, 레몬 즙 좀 뿌려서, 기 십만원 받는단다.맛이 뭐 그리 특별한가,아니. 그것도 아냐. 커다란 은쟁반 위 얼음을 담아  그위에다 굴을 올린 후, 은식기와 함께 대접한단다. 흰장갑을 낀 웨이터가 하나씩 떼어내서 주면 눈을 지긋이 감고, 아주 천천히 오래도록 음미하며 먹는다지. 뉴욕의 미슐렝 식당들은 굴철이..
19. 그건 약과지. 나는 할머니 입맛인지라, 약과를 좋아했기에 "그건 약과지". 란 말을 들으면 뭔가 대단히 맛있고 좋은 건 줄 알았다. 이런 내가 "문해력"이 어쩌고 저쩌고 할 자격이 있을까? 그건 약과지 ㅎ 약과는 마카롱 만큼이나 비싼 간식이란다. 밀가루만 해도 귀한 재료인데 참기름과 꿀 엄청 든다는 거 아냐? 장선용 선생님이 외국에서 아이들 낳고 키울 때 한국의 맛 기억하게 하려고 약과 많이 먹이셨다지. 엄마의 외할머니께선 명절마다 매작과 만들어서 주셨어.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칼집을 낸 후, 꼬아서, 튀기면 아름답고 맛있었단다. 밥도 겨우 먹고 살던 시절에, 그 밥 마저, 흰 쌀은 거의 없고, 잡곡이 다였던 그 시절에 쌀 zip인 떡을 빚어 먹거나, 과자를 만들어 먹었다는 것은 대단한 사치지, 아마, 최소 반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어머님, 뭔가 달라지셨어요. 시술이라도? 무슨 소리냐, 입술 위에 보랏빛 핏 자국같은 게 이빨같은데요. 사실 드라큐라같으십니다. 아빠도 확인해 봤스모니다. 껄껄껄, 매일 밤추운 밤거리를 걸어오면서, 아빠에게 . 바닥 따뜻하게 덥혀달라고, 욕조에 물을 받아놔 달라고, 전화한단다. 몸을 덥힌 후, 와인 1/3 잔 마시면서, 아빠랑 이야기 하다 잠들어서 그래. 아하, 그러니까, 핏자국이 맞긴 하네요. 포도 핏자국, 그렇군, 성당에서도 피라고 해, 예수님의 피. , 엄마는 밤마다, 피를 빨다가 잠드는 드라큘라 맞네, 어머닌 그럼, 늙지도 돌아가시지도 않겠어요. ㅎㅎ그런데 마늘도 좋아하시잖아요? 맞아, 내가 이렇게 밤마다 뱀파이어가 되다니. 그저 감사할 뿐이란다. 건강하니. 술을 마실 수 있잖아. 이런 저런 술 ..
"What you eat" is "Who you are". 네가 먹는 것을 알려주마, 네가 누구인지 알려줄게. 그런 말이 있다. 아마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으렴 내지는 , 작작 나쁜 거 먹어대렴 같은 뜻같은데 ㅎ 한때 나는 종이를 먹는 사람이었다. 나의 주식은 종이였다. 그런데 한때 영어 사전을 씹어 먹으면 영어를 통달하게 된다는 소문이 퍼졌다. 옛날 말이 다 옳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니다도 있다. 그때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맞다도 있다. 2000년이 되기 전에는 학생들이라면 Essence랑 Standard란 사전을 주로 봤다 나는 항상 누구나 아는 1등보다는 개성있는 2등을 좋아했다. 에센스도 그랬다. 두툼해서 붉고, 젖살이 남아있는 시골 소년같은 그 사전이 마음에 들었다. 그 사전을 사서 자주 찾아봤다. 요즘으로 치면 영어판 구글, 영어판..
32. 칙힌-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을 봤다. 잊지 못할 감동이다. 그러나, 다시는 못볼 것 같다.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다시는 못볼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다. 자신은 자일에 몸을 묶고, 매일 어두운 심연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사람이라고, 머리에 플래쉬를 밝히고, 봉준호도, 황선미도, 모두 혈혈단신 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크게 울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길어오르는 사람들같다. 마당을 나와 숲에서 사는 암탉 이야기였는데, 너와 마포 도서관가서 삽화가 김환영 선생님을 만났던 기억도 난다. 훗날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지. 지금으로는 마당이라도 마음껏 활개치고 다니는 닭이 얼마나 귀해졌는가, 아예 양계장에 갇혀 태어나 앉은 채 죽어가는데....김환영 선생님이 삽화를 그리기 위해 양계장을 방문해 ..
31. 성시경의 부엌-stay hungry 성시경은 참 재미있어, 단언컨데 코로나로 가장 많이 성장한 가수는 성시경이라고 본다. 코로나로, 사람들간의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다보니, 대면 활동이 거의 사라져버렸지. 당연히 공연계는 큰 타격을 받았고, 코로나 초창기에 그는 인스타 그램에 매일매일 요리글을 올렸어, 내가 성시경을 알게 된 것은 요리 피드를 읽으면서 였는데, 너무너무 재미있었단다. 아무도 가수의 SNS라는 걸 믿지 않을 정도로 허름한 요리를 올리는 거야 그것도 매일,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신 카레부터, 자신이 즐겨먹는 신세 라면 , 떡국장, 급기야는 빵도 굽더라, 성시경의 부엌에는 그럴싸한 요리 도구가 하나도 없었어, 양념도 그냥 마트에서 파는 평범한 것들, 빵을 구울때는 반죽이 부풀어 오르게 휴지를 해야 하는데, 그런 도구가 없으니, 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