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선생님의 "도둑맞은 가난"이란 책이 있다.
사실 나도 가난을 벗어난 지 꽤 오래지만, 여전히 가난하다.
사실 나는 마음이 가난한 거 같기도 하다 .
성경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이에게 축복 있으리라 했는데, 고백컨데 축복을 기대할 가난은 아니다. 내 가난한 마음은,
남편 역시 그렇다. 구멍난 속옷을 그대로 입고 다니고, 여전히 싼 것을 검색하는 모습을 보면,
예전 텔레비전에서, 함익병 피부과 원장 아내가 울먹이며 " 남편은 여전히 가난을 못 벗어났다" 라고 말했다.
최소 수백억의 재산을 일군 자산가인데도, 주렸던 시절의 습관이 그대로 남아있다며,
세계 최빈국에서, 국민 총생산이 10위권을 넘나드는 부국이 되고도, 가난한 사람들로 넘친다고 한다. 상대적 빈곤, 빈부 격차 때문이란다.
작가 문미순은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통해서 진짜 가난을 되돌려주었다.
진성 가난이 무엇인가 보여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난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192-30년대 한국 소설을 보면서 나는 늘 궁금했다.
어쩌면 남자들이 이리 찌질한가,
어쩌면 여자들은 저리 개고생인가,
어쩌자고, 한국은 이다지도 궁핍하며 비참한가,
그런 모습을 그린 소설이 지긋지긋했고, 왜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글이라며 찬양일색인가 싶었다.
196-70년대 들어서도 여전했다. 누런 장판에 배 깔고 앉아 싸구려 커피를 마시는(장기하 미안 ㅎ) 남자들로 가득했고, 수음이니, 출생의 비밀이 어쩌고, 그걸 낭만이며, 감성이라 치켜 세우는 환호가 늘 의아했다.
문학은 현실의 반영이라는 게 과연 이런 것일까?
문미순은 2023년에 한국의 가난을 다시 들고 왔다. 그런데, 그들의 가난은 찌질하지 않다. 품위있다. 물론 벗어날 길이 없다. 그래서 더 장엄하다. 그들의 가난은 내게 곧 닥칠 가난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누리는 풍요가 더욱 소중하다. 내가 누리는 가짜일지도 모르는 부유함이 더더욱 귀하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 그러니까, 시간과 무료함과, 목표 없음과 속절없이 늙어가는 몸과 그 모든 것들이 갑자기 빛을 낸다.
이건 결코 남의 불행을 보면서 눈물 닦는 척 몰래 흘리는 미소가 아니다.
그리고 역시 사람 팔자는 반이 부모라는 옛말이 또 기억난다. 준성과 명주(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명주실같은 ), 둘다 부모 덕으로 산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보면서 ,내내 "운수 좋은 날" 이 떠올랐다. 맞아 그 남자는 멋있었어. 인력거꾼 남편, 이년아, 설렁탕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했던 그 남자는 되게 멋있었어, 그 남자의 핸들을 준성이가 물려받았지. 준성이는 대리 운전을 한다지. 증평으로 가는 이사 트럭도 몰고 말이지. 역시 운전 잘하는 남자가 멋있어. 그런데 운전 못하는 나의 남편도 멋있어. 우리를 태우가 가다 전봇대에 차를 부딪힌 후 트라우마로, 운전을 못하는 남편도 멋있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천천히 걸어가고, 돌아가는 나의 남편도 멋있어.
겨울을 잘 견뎌온 우리는 예전의 우리처럼 가난한 국가에 가서, 그 나라의 인력거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
운수 좋은 날들이 내게 계속되고 있다.
머지 않아 내게도 가난이 닥칠 것이다. 미리 두려워하는 대신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고 싶다.
아, 문미순 작가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이 빼어난 것은, 벤틀리 차주와의 협상이 끝나지 않아서이다.
문미순 작가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이 빼어난 것은, 은진이가 또 언제 돈을 달라고 찾아올지 몰라서이다.
그게 바로 인생이다. 그게 바로 open end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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