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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어-양희은

양희은의 40년 팬이다. 

 

삼촌이 불온한 분위기를 풍기며 알려주던, "아침이슬" 부터,

송창식과, 씩씩하게 웃으며 부르던 "한 사람 곁에" 그녀는 푸른 드레스를 입었지. 

중학교 때 "하얀 목련"을 듣고도 마냥 좋았다. 

그러니까, 나는 분위기를 잘 못타는 좀 이상한 애였던 거다. 노래방이나, 장기 자랑에서도, 분위기 깨는, 흥을 돋우지 못하고 어색한 공기를 몰고 오는, 

재수할 때는 "한계령"을 그에게 많이 불러줬다. 

20대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로 건너왔다. 

40대에는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에서 "상록수" 들으며 사람들과 많이 울었다. 그때 그녀는 만신이었다. 그냥 우리나라 대표 무당이자, 소리꾼이었다.

 

일산의 어느 마트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난 적이 있었다.

"이세이 미야케" 할인 판매장이었는데, 너무나 그녀와 어울리는 옷 아닌가, 나처럼 70% 할인하는 데를 뒤적이고 계셨다. 세상에, 우리나라 대표 가수가, 

"안녕하세요. 팬입니다. 선생님 노래 직접 듣고 싶은데 아쉽게도 아직 그럴 기회가 없었어요"

예의 쨍하고 카랑카랑, 씩씩한 목소리로 "컨서트 시간 알아보고 오세요" 하셨다.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얼굴을 살피면서, 또박또박 말씀하셨다. 경기여고 졸업생 답다고 생각했다. 반듯하고 명석하며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딱 맞출 줄 아는 경기 여고 졸업생. 

 

그녀의 첫 책 "그러라고 그래"는 볼 마음이 없었다.

그녀의 두번째 책 "그럴 수 있어"는 봤다. 

 

공연 전에 그렇게 떨고 예민해지는가 고백은 놀라웠다. 우선 내게 위로가 되었다. 세상에 그 분도 나와 같구나, 

나처럼 지가 한 밥이 제일 맛있다는 것도 , 남편의 도시락을 싸는 것도, 

말하는 것이 직업이라,집에 오면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도, 

늘 갇혀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그렇게 싫고 욕하고, 미워했던 남편이 어떻게 될까봐 전전 긍긍하는 것도, 

나와 같아서, 큰 위로가 되었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들을 끔찍이 아끼고, 

아주 작은 데서 기쁨과 웃음을 찾고, 좁쌀만하더라도 어질고 착한 마음을 알아보고, 눈시울이 뜨거워 지는데서는 달랐다. 

그녀 역시 외롭지만, 그녀에게는 많은 친구가 있었다. 

 

그게 내가 가난한 이유였구나 싶었다. 

 

결국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나를 보호해준다고 했다. 

나는 푸른 안경을 쓴, 양희은을 아낀다. 나는 푸른 청바지를 입은, 양희은은 좋아한다. 

그녀가 날 구워해 주리라, 그녀가 내게 와서, 돈을 주거나 밥을 주거나, 뭘 알려주는 게 아니고, 

그녀의 노래가 그녀의 정신이 그녀의 다름이 나를 지켜주리라, 

 

나도 부자가 되어야지 그녀처럼,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