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어느날 버스를 탔다.
빈 자리가 있었고,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바닥엔 자두, 그 중에서도 늠름하게 잘 생긴 후무사 하나가 굴러다녔다.
버스 운전석에서 하차하는 데까지, 좌석 아래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늦여름 가을이 오기 전 하나쯤은 먹던 후무사를 올해는 그냥 지나치나 했는데,
여기서 보네.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자두가 굴러다녔다.
버스 안 누구도 자두에게 관심이 없었다.
처음엔 나도 바라 보다가,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자두를 계속 이리 저리 흔들리기만 하고,
마침내 나는 허리를 구부려 자두를 주웠다.
한 알의 자두,
비현실적이었고,
돌연했고
존재감이 뚜렸했으며,
선물이었다. 내게.
버스 안에 자두 한 알이 떨어짐으로 모든 것들이 완전히 바뀌었다.
집으로 돌아와 자두를 책상위에 얹어놨다.
그리고 그날 일기로, 자두를 썼다.
내가 만일 아이라면, 자두를 만졌겠지.
배가 고팠다면 그 자리에서 쓱쓱 닦아 먹었을테고,
자두를 그린 사람도 있겠고,
그 자두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도 있겠지.
아침에 그 자두가 기억난다.
과육이 치밀하고, 향기로우면서, 단맛과 신맛 때로는 희미한 짠맛과 떫은 맛이 어우러지고, 하나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해지는,
자두,
자두 5개를 만원 주고 샀는데 버스에서, 하나를 잃어버리고, 4개만 받은 줄 알고 가게 주인에게 따지러 가는 이야기.
엄마가 아침으로 자두 싸줬는데 학교 가보니 없어서, 엄마랑 옥신 각신 하는 이야기.
혹은 사랑하는 그가 좋아하는 자두를 주려고 가방을 열었는데 사라져 버려 황당해하는 연인 이야기..
엄마 자두를 찾아가는 아기 자두 이야기.
보라색 복숭아란다.
포모사, 아름다운 이란 뜻이란다.
대만산인데, 미국으로 건너가 품종 개량했단다.
과일 가게의 자두라면 나의 눈을 사로잡아 그토록 오래 기억에 남지 않았으리,
자두가, 버스 안 그것도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기에 이토록 오래 내 속에 남아있다.
그러니까,
흔한 대상들의 뻔한 위치를 바꾸어 보는 것,
그리하여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버리는 것.
그 낯섬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출발하는 것,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일단 가보는 것,
그 여정을 즐기는 것.
그것이 상상력이고,
그것이 글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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