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부부가, 서로 존대하며 "여보" "당신"이라고 칭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노년에 이르러서도, 서로 이름을 부르며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도 보기 좋다.
허물없이 편하지만, 서로를 깍듯이 대접하는 모습은 언제봐도, 부럽다.
한데 남편을 그냥 "아빠"라고 부를 때는 좀 어색하다.
누구의 아빠란 뜻일까, 자신의 아빠인가, 자식들의 아빠인가,
그렇지만, 희끗희끗한 머리를 하고서도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여인은 어쩐지 귀엽다.
대학 시절,남자 선배를 "형"이라 부르는게 원칙이었으나, 나는 꿋꿋이 "오빠"라고 불렀다.
"오빠 생각" 란 동요도 즐겨 불렀다.
남동생을 바래던 집안의 세 자매 중 첫째라 오빠를 꿈꿨는지도 모른다.
오빠를 남편으로도 꿈꿨다.
2-3살은 손위였으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바보같은 난, 나보다 연상인 남자는 지혜롭고, 담대할 줄 알았다. )
공부를 빼어나게 잘해야 하고, 이지적이기를
말수가 적고 마음이 넓었으면
어떤 운동이건 다 능하고, 자기 세계가 분명했으면
나는 이야기꾼들을 좋아했는데,
그게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거나, 수다스러운 게 아니라,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의 이야기에 매번 혹했다.
그리고 서울로 가서 "비단 구두"사올 오빠는 내 오빠가 아니었다.
날 서울로 데려가고 나와 서울에서 함께 살 오빠였다.
"조용필"이란 가수가 등장하면서 처음 들었다. 사람들이 외치는 "오빠"를
그가 노래할 때마다 엄청난 인파들이 모였고 한소절 한소절 마다 "오빠" "오빠"를 연호했다
조용필은 만인의 "오빠"였지만 내 오빠는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가 좀 이상했고, 굳이 내가 아니라도 누이들이 많았으니까,
조용필은 정녕 "오빠"이긴 했다.
음악을 좋아해서 학교를 중퇴하고 밤무대에서 연주하다 우연히 노래하게 되고 독학으로 작사 작곡을 해냈다.
88 올림픽을 앞두고 모두가, 희망에 차서 밝고 경쾌하며, 건전가요 같은 응원가를 불렀다.
"아, 대한민국", "아침의 나라에서" "손에 손잡고"처럼 애국가 계보를 잇는 곡들이 온 거리를 메웠다
그만 홀로 "서울서울서울"을 불렀다.
다른 응원곡과는 분위기, 박자, 가사가 판이한 곡을 부르며, 그는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왠지 쓸쓸해질 것 같다고 했다.
그때 조용필은 드디어 내 오빠구나 싶었다.
남과 달라보이는 사람. 지혜롭고 말이 묵직하면서, 힘이 넘치는 남자,
해질 무렵 거리에 나와 차를 마시면,
내 가슴에 아름다운 냇물이 흐르네
이별이란 헤어짐이 아니엇구나,
추억속에서 다시 만나는 그대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누군가에게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 손,
그 언제쯤 나를 볼까 마음 서두네,
나의 사랑을 가져가버린 그대,
서울서울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
서울서울서울
그리움이 남는 곳
서울서울서울
사랑으로 남으리,
never forget
oh my love Seoul!
이별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고
차 한잔을 함께 마셔도 기쁨에 떨렸네
내 인생에 영원히 남을 화려한 축제여,
추억속에서 다시 만나는 그대,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
서울 서울, 서울
그리움이 남는 곳,
서울 서울 서울
사랑으로 남으리,
never forget
oh my love Seoul!
오빠를 찾으러 "서울"로 왔으나, 쉽지 않았다. 늘 헤매기만 했다.
결국 "오빠"와 결혼했고, "오빠"가 될 사내 아이를 낳았다.
그 둘은 어떤 "오빠"일지는 그녀가 알겠지 . ㅎㅎ
서울로 와서 드디어 오빠를 만나러 갔다.
오빠의 별명은 "아시아의 거인", "작은 거인" 이었다.
40이 훌쩍 넘어 조용필 오빠 컨서트에 처음으로 갔다.
그 전날 한숨도 못잤던 기억이 나고,
당일도, 긴장해서 물도 못마셨더랬다. (선보냐? 단 둘이 만나냐? 대체 왜 ㅎㅎ)
인천 문학 경기장이었고, 오빠와 함께 나이들어가는 여인들이 잔치를 벌였다.
"오빠"를 외치며 박수치고, 노래하고, 울고 웃다가, 서로 먹을 거리와, 응원 도구를 나누는 잔치였다.
오빠는 깊이 사랑한 음악에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드높았으나, 쓸쓸해 보였고,
그 작은 체구에 끼와 깡이, 한과, 힘이, 응축되어 있었다.
오빠의 "간양록"과 "한오백년"을 듣고 나는 서울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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