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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s

MZ Park!

 

안녕하세요?

제가 처음 뵌지 40년이 넘었네요?

40년만에 갑자기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박씨 부인"전이란 책에서 뵈었습니다.

허물을 벗고, 도술을 부려 적을 물리치고, 등등, 전래 동화에서 만난 위인들과 달랐어요. 뭔가 달라 보인다는 건, 그건 관심이고, 그건 사랑 아닐까요?

그러다가, 전 당신을 오래도록 잊고 지냈습니다.

 

당신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박여사. 박 언니, 박 자매. 사실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남편의 지위에 따라, 층위를 둔 것같은 여사도, 정말 가까운 사이에서만 쓰고 싶은 언니도, 가족을 넘어 종교에서도 두루 쓰이는 자매 역시 딱 맞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냥 Park라고 하겠습니다.

박달 나무 일까, 밝음 일까, 밖일까, 무슨 뜻일까 궁금해서, 그 모든 것이 다 들어간 Park라고 하겠습니다. 괜찮으신가요?

 

다시 "박씨전"을 봤습니다. 금강산에 주거하는 박처사의 따님이셨다고요.

금강산이라,, 지금은 북한 땅이라서, 가볼 길이 없고요.

다만 저는 정선의 금강산도로, 우리 옷 장인 이영희씨가 한복 화보를 찍은 곳으로만 알고 있어요. 제주 출신 거상 김만덕이 정조의 포상으로 다녀온 곳이죠.

 

박처사는 이시백과 이득춘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졌고요. 이득춘은 박처사를 알아보는 혜안을 가졌어요. 그런 눈길이 얽혀, 당신은 당대 일등 신랑감 이시백과 결혼하게 됩니다. 남여간의 인연이, 사랑은 인간의 계산속을 뛰어넘은 신비란 걸 다시 깨닫게 되요.

 

또한 당신을 알아보는, 당신을 아끼는 남자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어요. 아버지로 시작해서, 시아버지로 이어져서 인조 대왕까지도요. 마침내, 남편의 사랑도 받게 됩니다.

사랑과 인정,기대, 보호가 사람을 살리나 봅니다.

 

우리 옛이야기에는 엄마가 없어요. 콩쥐 팥쥐, 장화 홍련, 심청, 해와 달, ..... 하나같이 엄마가 없어요. 우리 어머니들은 모성애 지극한 것으로 유명한데 어째서 우리 이야기에는 엄마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엄마가 없다는 건 중대한 결핍이죠. 뭔가를 잃어버린,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응원하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해요. 너도 엄마가 없구나, 그래도 괜찮아, 우리 버텨보자,

 

당신도 역시 엄마 없이 아버지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금강산에서 잘 자라다가 시집, 즉 한양으로 이식되어 온 거죠. 처음에는 어려웠죠. 못생겼다고, 도저히 한양에서 먹히는 인물이 아니었던 거죠. 시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식구의 모든 구박에 당신은 피화당을 짓고, 오색의 흙을 일구어 정원을 가꾸어나갑니다.

 

이시백이 당신을 아끼지 않아도, 당신은 눈물 대신 일을 합니다. 피화당을 짓고, 계화와 함께 정원을 가꿉니다. 직접 지은 조복으로 시아버지를 돋보이게 합니다. 인조 대왕은 당신이 놓은 수에서, 깊은 외로움과 굶주림을 읽어냅니다. 그리고 당신을 충분히 먹일 수 있도록 곡식을 내립니다. 그렇다면 주림은 나라님이 마음 먹기 따라 구할 수 있군요. 외로움은 나라님도 구할 수 없어도.

 

Mz.Park,

나는 당신이 피화당에서 고봉으로 밥 먹으며 옷을 짓고,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남편이 세상에 나갈 때가 되자 옥색 연적을 구해 뒷바라지 하기도 했지요. 저는 Virgina Wolf가 또 생각났어요. 여성이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려면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 파운드의 수입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죠. 당신보다 무려 200년쯤 지나서죠.

 

아, 그리고 비루먹은 말 이야기(빌어먹을이랑도 비슷하군요 ^^)

당신은 장에 가서, 비루먹은 말을 반드시 300냥 주고 사와야 한다고 했더랬죠.

여기서도 안목이 돋보입니다. 추레한 겉모습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 또한 반드시 제 값을 치루고 가져올 수 있는 떳떳함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그 말을 삼년동안, 매일 한 되의 깨, 한 되의 쌀, 한 되의 겨로 죽을 쒀서 먹이던 장면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먹이고 살피고 키운다는 것의 숭고함이 새삼스러워서요. 어쩌면 당신이 곧 비루먹은 천리마였는지도 모르겠네요. 대륙에서 쓰임새가 빛을 발할 천리마요. 그리고 나서, 역시 천리마를 알아보는 중국 사신에게 100배 이윤을 남기면서 팝니다. 역시 돈을 벌려면 사업이지. ㅆㅅ무릎을 치면서 봤어요.

 

한 되의 깨, 한되의 쌀, 한 되의 밀을 매일매일, 적어도 1000일을 먹여 키울 천리마가 있을까? 그 천리마는 곧 자신일 수도 있으니, 의심치 말아야겠지요?

 

이시백이 과거까지 급제하고 나서 당신은 홀연히 금강산으로 떠납니다. 요즘으로 치면, 가출이겠죠.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오냐 너 한번 나없이 살아봐라하고요. 그 후 당신은 홀연히 허물을 벗고, 절세 미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선, 성형수술설이 유력하지요. 농담입니다. 그건 지극히 경박한 현대적인 발상이고요. 그보다는 당신의 부재 속에서 당신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드디어 당신의 가치를 알아본 거라고 봤어요. 시백이 눈을 뜬거지요. 당신이 허물을 벗은 것이 아니고요. 시백의 눈꺼풀이 벗겨지면서, 눈꺼플이 씌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아름다움에 눈을 뜬거지요. 이 역시 안목의 이야기라고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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