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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s

네 톨의 쌀 알이 만나서-대학로, 학전, 김민기, 서울대학병원

김민기 선생이 떠나셨단다. 
별세 소식을 듣자마자, 조문하러 가야겠다 싶었다.
지인과 서울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창경궁 앞 서울 대학 병원 정류장에서 내렸다.
암병동이다. 
병원 앞은 아주 오래되고 느렸다. 
백발 성성한 분들이 천천히 움직이셨다. 
젊은이는 물론 아이 하나 없었다. 
 
장례식장으로 들어가면서도 노부부를 위해 문열어 잡아드렸다. 
동행이 정태춘" 선생을 뵜다고 했다. 여전한 모습으로 저 밖에 서 계시더라고,
 
2층 9호실이다. 계단을 올라가니, 조문객들이 줄서있다. 오른쪽 벽면에는 각계에서 보낸 화환 대신 리본만 잔뜩 걸려있다. 
화환은 하나, 화분은 2개, 흰색 리본은 한쪽 벽면을 꽉 채웠다.
참배를 기다리며 목공예를 시작하셨다는 정태춘 선생 근황 이야기 끝에 역시 천재 답다며 우린 웃었다. 
우리 앞에 선 한 남자가 돌아보신다. 
조문하러 와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들어서인가 싶었다. 
그런데, 정태춘 선생과 소속 기획사 직원이셨던 거다. 
헉,
 
고 3때 북한강에서 매일 들었다고, 
그 노래가 키웠다고 했더니 
환하게 웃으셨다. 
반백에 맑고 고뇌로운 얼굴이셨다. 거의 반세기 전 얼굴, 체형, 분위기 그대로셨다. 다만 물기가 좀 날아간 듯
 
차례가 되자, 유가족께서 함께 조문하라셔서, 우리 넷이서 김민기 선생님께 향을 피우고 절을 했다. 정태춘 선생이 우리를 대표해서 향을 꽂고, 묵념한 후, 절하시고, 유족과 낮은 목소리로 말씀을 나누셨다. 
함께 한 분은 송창식 선생 희수연에서 만난 일화 
나는 학전 소극장에서 뮤지컬마다 뵌 이야기를 드렸다. 
돌아서면서 머리 숙여 다시 인사드렸다. 
 
흰 국화에 쌓여 안경낀 채  김민기 선생님이 웃고 계셨다. 옆 모습이었다. 
 
그냥 갈까하다 김민기 선생님께 밥을 얻어먹고 싶었다.
삼삼오오  식사하고 있는 조문객 사이로 정태춘 선생님 일행을 찾았다. 다가가 함께 조문한 일행이니 같이 밥 먹어도 되지요? 웃으며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그러라신다. 
조의금, 화환 일절 사절하셨지만, 그분이 주신 밥을 정태춘 선생님과 함께 먹고 싶었으니까, 
 
눈물 글썽글썽 목이 메이는 지인을 아무말 없이 바라보자니, 정태춘 선생님이 나를 가만히 들여다 보신다. 
언니는 왼편을 바라보며 눈물을 참았고 나는 그녀를 지켜보고, 정 선생님은 날 바라보고, 매니저는 가수님을 응시하고, 
그러니까 그녀 왼편에 김민기 선생이 계셨던 듯 ㅎ
이렇게 우린 모두 둥글었다. 
 
우린 함께 밥을 먹었다. 선생은 아주 맛있게 골고루 드신다. 
신인상 받으실 때 모습 가끔 본다고, 선생의 스무살 무렵 패기를 생각한다고, 20살 이후에 좋아한 노래들은 금방 잊힌다고, 나같은 사람 되게 많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눈꼬리가 접히면서 환하게 웃으신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자꾸만 만나게 된다고 언니가 말했다. 예술의 힘이 놀랍다고도, 
선생은 예술가들이 성장하는데, 더이상 반응이 오지 않으니, 그냥 접게 된다셨다. 홈페이지, 유튜브, 쇼츠 등등 계속해서 활동하고 계신다고셨다. 다큐멘터리 봤냐셨다. 40주년 공연 왔냐 셨다. 찾아보면 얼마든지 알 수 있다셨다. 
 
그렇다.
그들은 쌀 한톨에도 계속 글씨를 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쌀을 더이상 먹지 않고
쌀알을 들여다 볼 마음의 여유가 없고, 
쌀 알에 쓴 글씨를 읽기에는 눈이 너무 나빠졌다. 
게다가, 쌀 알은 무수하다..........
 
네 톨의 쌀 알이 만났다. 
혜화, 
대학로,
서울 대학 병원
장례식장
 
네개의 쌀알들이 머리 맞대고 앉아 밥을 먹었다. 
김민기 선생이 준 밥을 먹었다. 
 
헤어지면서 언니는 정태춘 선생의 손을 잡아보고 싶다며 악수를 청했고 선생님 기꺼이 맞잡아 주셨다. 
나는 허리와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드렸다. 
 
이제 다시는 그를 뵐 수 없으리. 
김민기 선생님도
정태춘 선생님도 
 
서울대 병원 지나 대학로 쪽으로 나와 학림 다방에 들렀다.
창 가에 앉아 안감내가 있었다던 옛 혜화를 그리며 차를 마셨다.
김민기 선생은 학림에서 밤새 맥주를 드셨다고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 밥을 지어야지. 
쌀에서 밥이 되어야지. 
밥을 지으며 "촛불" "북한강에서"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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