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he ones

여름은 빨래터에서 시작되고

지금은 7월 중순, 그러니까, 어쩌면 가을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여름을 드디어 준비했다. 

여름이 오면, 나는 빨래를 시작한다. 그것도 흰 빨래들을 

물론 벽장속의 선풍기를 꺼내고, 에어컨 필터를 청소하기도 한다. 또 이불 호청을 바꿔 시원한 잠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여름은 늘 빨래로 시작한다. 빨래와, 삶기와, 풀먹이기, 다림질로 시작한다. 

흰 셔츠, 흰 티, 흰 속옷 등등  모조리 꺼내서,  비누질 잔뜩 해서, 빨거나, 표백 세제를 풀어 며칠 담궈 두거나, 혹은 오래 푹푹 삶는다. 어떤 것들은 풀을 먹이기도 한다. 햇볕에 바짝 마른 옷들을 하나하나 다림질을 한다, 그러다보면, 며칠이 후루룩 지나간다.

해마다 그렇다. 올해는 그냥 넘어가려다, 어제밤 드디어 빨래를 햇다. 새로 샀을 때 그렇게 기뻤던 흰 수건들을 새로 다 걷어서, 삶았다. 집 안은 습기와 열기로 가득차, 에어컨을 켜는 것으로도 후끈 달아올랐지만, 조금 귀찮기도 했지만, 조금씩 신바람이 나기도 한다. 

 

겨드랑이에 누런 땀자국. 목둘레가 늘어나거나 때가 눌었는지. 음식 먹다가 튄 자국이 있는지 살핀다. 

한해를 넘긴 흰 티는 아무래도 첫해만 못하다. 그 쨍한 기운이 사라진지 오래다. 몇번 기분 좋게 입고 미련없이 버려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이럴때 보면, 나는 뼈 속까지 가난한 게 아닌가 싶어서, 좀 서글프기도 한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흰 티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아직 멀쩡한 데 버릴 수가 없어서, 

나는 매해 여름 빨래를 계속한다. 

 

빨래터가 무대인 문학작품은 많다. 

우리 민족도 백의 민족이라, 유난히 빨래, 빨래터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나의 빨래터에선, 흰 티와, 흰 셔츠와, 흰 속옷과, 흰 수건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나의 여름도 흰 색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the on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ZARA의 계절,  (0) 2023.07.17
흰 티는 기본템  (0) 2023.07.17
digestive  (0) 2023.07.04
의자,  (0) 2023.07.03
사랑은 무성영화  (0) 2023.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