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딸기 먹는 낙으로 산다.
딸기처럼 호사스런 과일이 있을까,
한겨울부터 빨간 딸기는 나오기 시작해서 정작 제철에는 아무도 딸기를 찾는 이 없다.
그 모양, 식감, 색깔에 이르기까지, 딸기는 요염하고, 도도하고 암팡지다.
여름이 다가오면 수박주스 먹으면 보낸다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복숭아로 여름을 난다.
황도, 노랗게 물컹한게 달아서, 몇 개씩 먹어도, 배가 불러 터질 것 같아도, 계속 들어가는 황도
자기가 얼마나 이쁜지 잘 모르는 여자의 속살처럼, 분홍빛도는 흰, 단단한 과육을 가진 백도,
그러다가 여름이 저물어가기 무렵에는 무화과가 나온다.
뜨거운 열기가, 아스팔트 타고 번져가는 길가에서, 파는 무화과를 박스째로 사서, 그 미지근한 단맛을 통째로 입안에 넣는다.
꽃이 없어서 그런가
가을이 오면, 사과가 얼마나 향기로운 지 알게 된다. 부석사의 영주 사과는 귀신에 홀린 맛이라던데,
나무에서 막 딴 사과의 향을, 사각거리는 소리를,
박스째로 포도를 사다가 씻어가며 선 채로, 몇 송이를 다 먹으며 보낸다.
겨울에는 어떤 과일을 먹으며 보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귤은 아닌데,
시원한 배를 먹으면 머리 속에서 얼음이 쫙 갈라지며, 푸른 바다가 보인다. 달고 시원하고, 푸른 바다를
그리고 곶감과, 말랭이를 내내 질겅질겅 씹으며 겨울을 난다.
이렇게 철철이 맛있는 과일을 먹으며 나는 복숭아꽃 살구꽃 피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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