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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the letter

신촌 세브란스 윤지영에게

윤지영, 
잘 지내니? 
어제 나는 초록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필라테스에 갔다. 
현우랑 미국 갔을 때 산 옷이란다. 마트에서 거의 낚은 거지. ㅋㅋㅋ 훔친 건 아니고, ㅋㅋ
그 초록 원피스가 널 데려다 주었단다
 
팔이 길고 아름다운 선생님과, 
다른 회원 한분 이렇게 셋이서 필라테스를 했지. 
 
나는 항상 저주받은 몸땡이를 욕하며 이거나마 하지 않으면 천형의 몸둥이로 살 수 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며 운동한단다. ㅋㅋㅋㅋ
 
그 분은 너와 많이 닮아서 기억하고 있단다. 
너처럼 길고 큰 눈을 가졌고, 
너처럼 잘 생긴 이마와, 아이같은 하관을 지녔으며
너처럼 길고 탐스런 머리카락을 지녔거든..
체격은 글쎄, 운동하기 전의 네 몸과 닮았단다. 
어쩌다 그 분과 같이 운동할 때마다, 윤지영이랑 닮았네, 
윤지영 잘 지내냐, 내 새끼 뭐 그러면서 스쳐 지나쳤는데,,, 
 
어제 수업 후, 탈의실에서 초록 원피스로 갈아입다가 마주쳤단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더니, 
그 분이 " 저 오늘 마지막 수업이에요" 
나는 " 세상에 이럴 줄 알았으면 먼저 인사할걸,  젊고 잘 생긴 남자도 아니고, 나이든 아줌마가 말 걸고 그러면 싫을까봐 인사 않했는데…”
그 분은 " 아니에요, 저에 대한 관심이라 전 좋아해요" 
이러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찡하더라. 
" 그럼 운동은 계속하세요?"
"집은 당산인데 회사가 신촌으로 옮겨서요" 
헐 ,우리 윤지영도 신촌 세브란스 최고 간호사인데, 
" 그럼 되게 글로벌하게 사시는구나, 집은 당산, 운동은 마포구청, 회사는 신촌"
막 웃으시더라, 
"회사 근처로 옮겨서 운동하려고요"
" 언젠가 어디서든 만나면 꼭 인사할게요"
" 운동하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 저 무지 오래했는데, 겁나 못해요. 그나마 이거라도 하니까, 중하라도 유지하는 거 같아요”
"언젠가 오전 11시에 운동하시는 거 처음 봤는데"
"세상에 그것도 기억하세요? 감사합니다. 저도 주말에도 몇 번 뵜어요 아쉽다, 먼저 인사할 걸" 
 
그러면서, 서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헤어졌다.
뒤에 수업이 없었다면 그녀에게  차를 대접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난 전화 번호는 묻지 않았을 거 같다. 
이제 난 누군가에게 연락처를 묻지는 않는다. 

 
지영아, 
나는 누군가 날 기억한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놀랍고 고마웠단다.
더더군다나, 윤지영을 꼭 닮은 들꽃같은 그녀가 날 기억하고 인사하다니, 
새삼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더라,
 
윤지영아, 
너 신촌 세브란스의 최고 간호사다. 당연히 너를 바라보는 환자, 가족, 의사, 직원들 천지 일것이다. 
너를 기억하고 네게 말 걸고 싶고, 너를 위해 기도할 사람들 천지일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는 죽음을 앞두고, 혹은 죽어서도 널 잊지 못할 사람들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지영아, 
너는 내가 도저히 상상도 못하는 세상을 떠받들어 가는 사람인 거다. 
 
물론 돈도 많이 받지만 ㅋㅋㅋㅋㅋㅋ 미안, 이런 천박함, ㅋㅋㅋㅋ
 
윤지영을 처음 만난지는 10년도 더 되었고, 마지막으로 본 것은 3년이 넘었으나, 나는 늘 윤지영과 함께 살고 있단다. 
사랑한다. 
신촌 세브란스 최고의 간호사 윤지영,

어제 헤어진 그녀도 그러니까 또 다른 윤지영이다,
윤지영이 아니라면 난 그녀를 결코 눈여겨 보지 않았을 테고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을 거다,
당연히 윤지영이 아니니 전화 번호를 묻지 않았겠지,

너는 그렇게 이 세상 단 하나의 윤지영이다

P.S누군가 윤지영을 사랑한다면, 윤지영을 아낀다면 그녀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전화 번호를 물으세요. 초록 원피스를 입은 지영이가 스쳐 지나갈 때,
#신촌 #세브란스 #수호천사 #간호사 #윤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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