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야,
내일 네가 수능을 보는구나,
너를 안지 10년쯤 되었던가,
네 이름을 자주 들었어.
함께 요가하던 할머니께서 영특한 손녀 이야기를 자주 하셨고,
운동하던 중, 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 듣고 할머니 뛰어나가던 기억도 나,
그러다, 네가 중학생이 되었고 나는 네 영어 선생이 되었지.
넌 영어를 무지 싫어했고,
영어 수업을 하기만 하면 곧바로 졸았고,
영어 성적도 좋지 않았어.
대신 너는 농담하는 것, LOL을 비롯한 게임하기를 즐겼어.
그러니까, 우린 매우 달랐단다,
나는 영어란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인데, 넌 질색이었고,
넌 기계와 숫자가 하는 말들을 좋아했어.
네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꼭 읽어보라고 했단다. 사실 나는 지금도 "모모"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헷갈려.
마을의 밖에 살면서, 말하기보다는 귀기울이기를 잘하는 모모의 이야기, 회색 그림자가 사람들에게서 시간을 빼앗아가자 그에 맞서서 결국 구해내는 이야기였다. 난 마지막 부분이 거의 이해가 되지 않았어, 대신 네가 꼭 모모 같구나 싶었어.
영어 수업을 듣지 않지만, 내 말을 귀기울여주는 , 아니 말보다는 오히려 그 뒤의 무언가를 더 귀기울이는,
그리고 넌 무엇보다 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었어.
친구, 공부, 학교 생활, 그 모든 것을 철저하게 네 의지와 선택에 따랐지.
그러면서도 누구에게 상처를 주거나, 척을 지는 일이 없었단다.
널 만나며 나는 우리가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해도 얼마든 믿고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투성이잖아,
모모야,
수능 떡을 사서 함께 줄 카드도 오래 공들여 골랐단다.
장자크 상뻬가 뉴요커 표지로 그린 그림이야. 검은 고양이가 센트랄 파크가 보이는 방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장면, 그 옆에는 푸른 색의 우아한 차 도자기들이 있고 말이야.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오는 거 같기도 했어.
바로 "모모"란 노래였다. 김만준의 4-50년 전의 노래란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쫒아가는 시계바늘이다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짓하며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을 행복한가
인간은 사랑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4-50년 먹고도 이 노래는 어리다.
지극히 개인적이며 고로 지극히 고유한 모든 것들은 영원히 젊다.
늙는 법이 없다.
시간이 잡아먹는 대신 시간을 잡아먹는다.
모모야,
방금 나는 사전에서 "모모"를 찾아봤다.
우선 한국어로
한 사람 이상을 통칭할때 쓰는 말
사물의 여러면을 아우러 쓰는 말
대상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이르는 말
일본어로는 복숭아네, ㅎ
중국어로는 광활하다. 먹을 갈다. 아무런 말없이 은근한 정을 나타내다.
그러니까, 모모는 거대한 괄호구나,
엄청난 가능성이며 약속이기도 하구나,
어쩌면 우리 모모를 이리 잘 알고 있는지 신기하다.
내일 지나 모레 우리 모모를 만나겠지.
짝수 시험지를 받게 되어 불안에 떠는 모모,
선일여고가 고사장이라 긴장된다는 모모
반 친구들이랑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 가서 잘 거라는 모모.
잘 자,
모모야,
#수능#미하엘엔데#모모#김만준#모모#짝수형수능시험지#선일여고#예일여고#장자크상뻬#newyorker#뉴욕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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