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에서 예은이를 만나기로 했다.
대학생이 되어 첫 방학을 맞은 예은이를 2년만에 보기로 했다.
거울을 보며 단장하면서 유튜브를 틀었다.
여백 서원의 전영애 독문학자가 "백설공주"를 낭독하셨다.
백발에 맑은 얼굴로 독일 바이마르에서 지내신다는 전영애 독문학자,
얼마 전에 본 "어른 김장하"처럼 잘 늙어가야지 다짐하게끔 하는 분들 천지다.
흑단목 창가에서 바느질하던 왕비는 흰눈을 보다, 그만 손가락을 바늘에 찔려, 흰 눈 위에 붉은 핏방울이 떨어진다. 왕비는 흑단처럼 검고 피처럼 붉으며, 눈처럼 흰 아이를 꿈꾸다.
그리하여 태어난 눈처럼 흰 아이,
곧 백설공주의 엄마는 돌아가시고, 왕은 새로운 왕비를 맞이한다.
자기보다 더 아름다운 이가 있다는 걸 견딜 수 없었던 왕비는 사냥꾼을 시켜서, 백설공주를 죽이려한다.
백설공주는 사냥꾼에게 빌고 숲에서 도망쳐서 난장이의 집에 당도하고,
사냥꾼은 멧돼지를 잡아 그 심장과 간을 왕비에게 들고 가 바친다.
백설공주는 숲속에서 혼자 마구 달렸고, 난장이 집에 들어가, 모든 것을 조금씩 얻어 입고 먹으며, 집안일을 하는 댓가로 산다.
백설공주가 살아있다는 것을 안 왕비는 첫날은 목을 조르고, 둘째날은 머리 빗질하며 죽이려 한다.
일곱 난장이들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났으나,
끝끝내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쓰러지고야 만다.
살아 있을 때처럼 어여쁜 백설공주를 못내 땅에 묻을 수 없어, 유리 관에 넣고 슬퍼하던, 난장이들에게 한 왕자가 찾아온다. 그녀를 얻으려 돈을 준다는 왕자의 청을 거절한다. 그가 공주를 사랑한다고 하니 관을 거저 준다.
왕자의 포옹으로 목에 걸린 사과가, 빠져 살아난 공주는 성대한 결혼식에 왕비를 초대한다.
왕비는 불에 달군 철신을 신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추게 된다.
백설공주 이야기는 어쩌면 제대로 늙기가 주제일지도 모른다. 난장이처럼, 혹은 적어도 왕비와는 다르게 나이들기를 말하려나 싶었다.
홍대 앞은, 대도시의 번화가 그렇듯, 한 여름에는 더더욱 뜨거웠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 실외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
관광객, 젊음, 트렌드 같이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뒤섞여 비등하고 있었다.
한 발 디디기도 힘들었다.
불에 달군 철신을 신고 걷는 것만 같았다.
그 열기속에 스무 살 예은이가 서 있었다.
일식당 안은 이미 자리가 다 차서, 우린 다찌석에 나란히 앉았다.
ㄷ자를 오른쪽으로 돌린 다찌 석 앞 4명의 요리사가 손님들의 주문을 받아 즉석에서 요리하여 대접한다.
그들의 눈이 모두 예은이에게 쏠렸다.
전영애 선생님이 낭독하신 "백설 공주"를 듣고 온 나는 곧바로 깨달았다.
저들이 바로 세상에서 제일 이쁜 여인을 찾아내는 거울이구나, 저들의 눈이,,
예은이가 백설 공주구나
내가 결정하고 행동해야 하는구나 어떤 왕비가 될지를 , 적어도 동화 속의 왕비는 되지 않겠다...
눈처럼 하얀 전영애 선생님은 숲 속에 홀로 집을 지으셨다. 정원을 가꾸며 길을 내셨다, 후학들과 더불어 괴테를 읽으셨다.
선생의 아버님 호"여백"에서 당호를 따오셨단다. "여백 서원"
85세에 평생 원을 이뤄 "킬리만자로"에 오르신 분이란다. 91세 소천하실 때까지 매해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셨단다.
전영애 선생님, 역시 왕비를 ,사냥꾼을, 일곱 난장이를, 왕자를 만나셨을 것이다.
숲 속을 헤매이다 날짐승을 피해 달리다 지쳐 문을 두드려 도움도 많이 받으셨으리,
독을 머금은 머리 빗을, 독이 든 사과 역시 수태 받으셨으리.
전영애 독문학자는 숲 속에 집을 지으셨다. 한 명의 왕자 대신 괴테와 함께 지내신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고 전해주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함께 읽는 사람이라셨다.
추신; 예은아, 세상 모든 거울이 네가 가장 이쁘다고 말하고 있어^^
이제 네가 결정하고 만들어 나갈 때란다 .어떤 백설 공주가 되어 갈지 다 네게 달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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