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고 긴 팔, 근육질의 길고 쭉 뻗은 다리. 작은 얼굴, 긴 목, 단정하게 묶은 머리. 평평하지만, 근육으로 뒤덮인 등,
팔자 걸음을 걷고, 가슴이 없으며, 돈이 아주 많이 드는, 무용 정도로만 아는 발레.
이화대학에 다닐 적, 기숙사에는 무용과 학생이 한명 있었는데 아주 체격이 건장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발레 전공이라는데 저렇게 체격이 좋다니.... 여름 방학이 지나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 그 애는 심한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들었다. 여름 방학동안 발레의 수도라는 러시아 쌍테스 부르그로 연수를 다녀온 그녀는, 동기가 죽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러니까, 공산 주의 치하였던 러시아에 발레 연수하러 갔다가, 그곳에도 맥도날드가 있다며 신기해 하던 친구들끼리 햄버거를 사먹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 후 나는 아들 덕분에 호두 까기 인형을 봤고,
아들 덕분에 스파르타 쿠스를 봤으며
내처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하는 어린이 발레 수업을 들으러 가서
심청, 춘향 같은 창작 발레도 보게 되었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유니버설 발레단의 연습 모습을 직관하게 된 것이다.
그당시는 황혜민 프리마돈나와 강예나 발레리나가 투탑으로 경쟁하던 때였던 거 같은데,
물론, 늘 베일에 쌓인듯, 비밀과 신비에 쌓인듯한 문훈숙 발레리나도 직접봤다.
그날은 비가 오던 날이고, 거울로 사면을 에워싼 연습실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그 피아노를 피아니스트가 연주했다. 그 음악에 맞추어 무용수들이 몸을 풀었다. 그녀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몸만 바라보며 운동했다.
작은 두상, 긴 목, 가늘고 긴 팔, 길고, 근육질의 발, 앞뒤로도 너무나 납작한 몸을 곧추 세우고, 뼈에 가죽만 바른듯한 몸을 바로 세우고, 오직 자신의 몸에만 집중 또 집중했다.
황현민 발레리나는 일단 키가 많이 작았다. 아름답지도 않고,
강예나 발레리나는 큰 키에 인형같은 얼굴, 일단 체격 조건이 발군이었다. 당시에 굉장히 유명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황현민씨는 지금도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강예나씨는 잘 모르겠다.
그 후, 나는 마포 청소년 문화 센터에서 발레는 1년 넘게 배웠다. 정혜미 선생님께, 그때 나는 아름다운 여인들을 많이 만났다. 박진희, 민지현씨같은 한예종의 여인들을 만났다. 일주일에 한번씩 해도 절대 늘지 않고, 빼먹으면 바로 줄어들어버리는 신기한 발레의 세계에 입문했다.
선생님의 임신과, 결혼으로 그 수업은 흐지부지 되고 ....
나는 정혜미 선생님으로부터 토슈즈를 받았다.
강수진의 발은 유명하고,
김주원은 누드 사진을 찍어 정직과 감봉을 징계로 받는다.
나는 그때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남자친구, 한국 무용가 이정윤과 찍었더랬지. 그 둘은 나중에 헤어졌고, 헤어지고도, 더 원이라는 너무나 아름다운 춤을 췄다. 언젠가 다시 공연한다면 꼭 보러 가고 싶다.
나같은 몸치가, 발레를 직접하고, 사랑하게 되게는 일이 바로 삶의 비밀이고 생의 빛이다.
나는 남산을 2번이나 올랐다. 지젤을 찾아서,
지젤은 심장이 약한 시골 처녀로, 귀족 출신인 알베르트와 사랑에 빠졌다가, 속은 것을 알고 상심하여 죽는다. 죽은 후에도, 저주에 걸린 알베르트를 구하기 위해 나타나 사랑을 보인다.
힐라리온, 마르타, 윌리들,
나는 군무가 아름답다는 걸, 우리 나라 무용수가 체형 뿐 아니라, 표현력이나, 기량에서도 세계 최고라는 걸, 느꼈다. 내가 발레 애호가 아니지만, 내가 지젤을 처음 보았지만, 그건 그냥 알 수 있다. 그냥, 첫눈에 아는 거다. 그녀들은 어째서 귀신이 되었을까, 우리의 구미호랑, 무엇이 다를까, 같다. 우리의 한이다. 우리네 처녀 귀신이며 춘향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지젤인가,
아니면, 사랑한 그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내가 지젤인가,
우연히 알게 되어 아무 기대 없이 본 공연의 심현희 씨가
심현희 발레리나의 표정을 , 발과 손과, 어깨와, 목, 등과, 허리를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에 다음 날가서 정말 코앞에서 본 조연재 씨가 나의 지젤인가,
심현희씨와 같이 공연한 박종석 씨의 아내 왕지원씨가 지젤인가,
'the on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행기 문을 열려다가, (0) | 2023.05.26 |
---|---|
나의 남산 이야기 (0) | 2023.05.26 |
돌이 말을 걸 때까지. (0) | 2023.05.26 |
edible economics (0) | 2023.05.19 |
너를 기다리는 동안 (0) | 2023.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