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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s

손기정 평화 마라톤 대회-한강의 기적

결혼 전 남편과 약속했다.
결혼 5주년에는 5키로 마라톤을 
10주년이 되면, 10키로 마라톤을
20주년이 되면 하프 마라톤을
40주년이 되면 풀코스 마라톤을 함께 뛰자고
 
부부가 된지 5년째 5키로 뛰고서라고 쓰고
걷는다고 읽는다,
아니 기어갔다,
아니 드러누워 있었다. 
남편은 이럴거면 이혼하자고 했다.  
그러고도 여러번의 헤어질 뻔했다.
헤어질 결심은 셀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보스턴, 런던, 도쿄, 뉴욕 마라톤에 참가하고 싶고, 
아니, 춘천 마라톤도 꼭 달려보고 싶다. 
봄이 오는 시내, 춘천,
한데 춘천은 봄이 가장 늦게 오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춘천이라 불렀으리. 
봄이 쉬 온다면 굳이 춘천이라 부를 리 만무하다. 
 
손기정, 
명문 양정고보  출신이다. 
아버지가 말년에 입원해 계시던 동아대학 병원 옆에 경남고등학교를 가본 적 있다. 
역시 대한민국 대통령을 2명이나 배출한 명문 고등학교이다. 그 학교 교정에 이태석 신부님 동상이 있었다. 근처 산복도로에는 이태석 거리와 이태석 생가 정류장이 있었다. 우린 여전히 무엇이 귀한 지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손기정 역시 양정의 가장 자랑스러운 선배라고 했다. 우린 역시 무엇이 귀한 지 잘 알고 있다. 
월드컵 경기장 앞에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하던 모습이 영상으로 크게 나왔다. 
당당하게   잘 생기고 건장한 청년 손기정이 너무나 슬픈 얼굴로 달리고 있었다.
너무나 암울한  얼굴로 달려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 
월계관을 쓰고 금메달을 목에 걸고 고개를 꺽은 채 서 있었다. 
 
그가 태어난지, 100년이 지나고, 그가 돌아간지 20년 넘어 손기정이 이태석이 달리고 있었다. 
영하로 내려간다고 하고 비가 뿌릴 지도 모른다는 데 건각들이 월드컵 공원에 모여서 달리고 있었다. 
군살 하나 없이 단출한 옷차림에 근육을 빛내며 달린다.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 운동화를 신고, 그냥 달린다. 
한 시도 허투루 쓸 거 같지 않은 단단한 사람들이 그냥 달린다. 
목적도, 보상도, 없이 그냥 달린다. 
토요일 아침 8시 30분에 시작되는 달리기 대회를 위해 그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해왔을까, 
 
매일 성실하게 생활하면서 틈나는 대로, 몸을 단련해왔으리, 
그들은 달리면서 땀을 흘리고 또 무엇을 흘려보냈을까, 한숨과, 질투와, 좌절, 그 모든 것들을 떨치며 쿵쿵 발걸음을 내딛었으리. 
서로를 응원하고, 화이팅을 외치고, 박수과 환호를 보내며 달린다. 
 
6차선 대로를 다 막아, 적어도 2시간 동안은 버스를 비롯한 모든 차량들은 가양 대교를 건널 수가 없다. 사람들은 한강위를 뛰어간다. 그것이 한강의 기적일지도 모른다. 한강 위를 여럿이서, 달려간다는 것. 
우리가 함께 달리지 않는다면, 시도조차 못했고, 끝내기는 더욱 어려웠을 터. 
 
그들에 섞여서 나도 뛰었다.
아니 걸었다. 
사실 기었다. 
기실 누워있었다. 
 
 함께 걷는 사람들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서로의 믿고 박자를 맞춰가며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가끔 얼굴을 마주보면서, 세상 끝까지 갈 기세로 걸어간다. 
 

공룡도 걸었고
유모차도 마라톤에 참가했으며
송파에서 온 훈장님도 독려하셨다. 
보행마저 힘들어보이시는 분들도 꽤 보였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것은 시각 장애인들이 봉사자와, 팔찌같은 것을 차고, 함께 뛰어가신 것이었다. 
빛나눔 봉사 단체 분들이었다. 형광 주황빛을 등에 붙이고 둘이서 함께 뛰어갔다. 
 
월드컵 평화의 공원 역시 한때 난지도로, 쓰레기 산이었다. 월드컵  개최가 결정된 후, 월드컵 경기장을 지으면서 새로 태어난 곳이다. 그곳에서 손기정 평화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나도 그들에게 묻혀 함께 뛰었다. 
헌 숨을 깊이 내 뱉고 새 숨을 마음껏 들이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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