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먹는 것을 알려주마, 네가 누구인지 알려줄게. 그런 말이 있다.
아마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으렴
내지는 , 작작 나쁜 거 먹어대렴 같은 뜻같은데 ㅎ
한때 나는 종이를 먹는 사람이었다.
나의 주식은 종이였다.
그런데 한때 영어 사전을 씹어 먹으면 영어를 통달하게 된다는 소문이 퍼졌다.
옛날 말이 다 옳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니다도 있다.
그때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맞다도 있다.
2000년이 되기 전에는 학생들이라면 Essence랑 Standard란 사전을 주로 봤다
나는 항상 누구나 아는 1등보다는 개성있는 2등을 좋아했다.
에센스도 그랬다.
두툼해서 붉고, 젖살이 남아있는 시골 소년같은 그 사전이 마음에 들었다.
그 사전을 사서 자주 찾아봤다.
요즘으로 치면 영어판 구글, 영어판 네이버같은 것,
사전을 찾는다는 건, 관심이고, 시간을 들이는 것이며 인내심이고, 호기심이고, 믿음이다.
아는지 모르는지 알아야 하고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틀릴 수 있다는겸허함이며
심심함이기도 하다.
일부러 헤매기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 모든 영어 잘하는 사람들은 사전 찾기를 즐겼다,
성적과 무관하게 그저 영어 공부하기를 즐겼다.
영어를 알아기는 게 너무나 재미있다고들 했다.
어려울 때도 있으나 그냥 계속했다고 한다.
그건 보증할 수 있다.
사전을 찾는다는 것은 책을 잠깐 내려놓고 다시 책을 펴는 행위이다.
책과 책 사이를 더 넓히기 위해 더 깊이 파기위해 시간을 들이고 씨앗을 뿌리는 행위이다.
어떻게 읽는지 소리를 내보자,
소리를 내 본다는 것은 노래이자, 시이고, 연극이다.
내 몸 전체를 악기로 써보는 것이다.
새로운 악기가 되보는 일이다.
여기서 시작했으나 어디서 끝날지 모르는 길이다.
모르는 길을 즐겨 가본 사람은 겁내지 않고
모르는 길을 즐겁게 다녀온 사람은 안다.
미지, 두려움, 호기심은 또 다른 문을 열어준다는 것을,
한때 나는 종이를 먹는 사람이었다.
나의 주식은 종이였다.
진흙, 거북이 등판, 파피루스, 양피지,
한지, 골판지, 갱지, 습자지. A4 용지.
나침반, 종이, 화약, 목판 인쇄술,
인류의 4대 발명품 중 하나란다.
지금도 종이를 먹는 사람이 있겠지
무엇에겐가 많이 먹힌 거 같은데, 종이는
네가 먹는 것을 내게 알려다오,
네가 누구인지 가늠해보겠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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