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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s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너를 다시 만났었지 가 아니고, ㅎ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내려, 내 친구를 만났다. ㅎ
 
붙박이 전교 1등이었고, 쭉 우리 가족 주치의인 40년 지기 
그녀는 여전히 우등생다웠다.
11시 2분 전에 도착한 나보다 먼저 왔고,
11시 수문 교대 의식을 봐야 한다며 
집중 또 집중해서 봤다. 
늘 주의산만하고, 늘 멍때리고 있는 나와는 달리. 
 
마지막 수요일이라, 우린 free pass! 
우린 늘 free pass상인가, 하며 막 웃었다. 
 
덕수궁 장욱진 전시에 들어가서도, 
내 친구는 연보부터 시작해서, 작품, 설명에 이르기까지 한 글자도 놓치지 않는다. 
내가 전체 다 보고 그녀를 찾아왔을 때 여전히 1 전시실....
 
2시간 가까이 장욱진의 글과 그림을 보고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우린 서로에게 뭘 사줄까 묻는다. 뭐든 다 해줄 수 있다. 
나는 책 사지 않는다고 했다.
영미는 책이 무거워서 싫다고 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겠다고
 
빈손으로 천천히 걸어서 건너편 북창 순두부에 갔다. 2층 , 너무 환하고, 뭔가 구내 식당 같은 분위기. 
우린 고등어 정식을 시켰다.
국물이 시원하고 연하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생김을 다 먹고, 
뚝배기에 생달걀을 넣고 바닥까지 긁어먹었다. ㅎ
 
찻집에 가려는데 
분명 근처에 많을 텐데, 우린 그냥 마냥 걷는다. 
시청 앞 스케이트 장에서 얼음을 지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길을 건나, 덕수궁 돌담길 지나, 성공회 교회를 거쳐, 조선 일보사 , 무교동 지나 정동 어디메, 그러니까, 경희궁 근처 빌리 엔젤에 들어갔다. 
 
통유리로 된 건물이었고, 천장이 아주 높았으며 투명하고 온유한 햇살이 내리쬐었다. 

우린 연인들처럼 둘이서, 길고, 좁은 공간을 둘이서 나란히 앉아서, 금성 출판사 명작 전집, 아버지, 목걸이를 이야기했다.

 박수근의 동화책 이야기도 했다. 아무리 가난해도, 행복과 사랑을 줄 수 있다고, 

묵직한 도기에 담긴 커피는 진하고 양도 많았다.

 

영미가 입은 쑥색 니트 같은 털을 한 새가 창가로 날아왔다. 영미가 입은 털조끼를 입은 새가 한동안 앉아있었다.  

 

영미가 내년에는 좋은 책을 보겠다고 한다. 

 

대입 시험을 5번 보고, 

대학을 3번 다니고도 모자라,

석사 에 박사까지 한 내 친구는 

올해는 빵만 구웠다고 모든 게 다 귀찮았다고 한다.

매일 빵과 쿠키를 구워서 직원들과 조카, 주변 아이들에게 나눠줬단다.

그래 놓고 모든 게 다 귀찮았다고 한다. 

 

 대체 넌 2호선인가, 녹색 순환선인가? 

 

그녀는 홀로 장욱진 전을 다시 보러 올 거라고 했다. 빌리 엔젤도 기억해뒀다가 다시 들를 거란다. 

 

우린 광화문 앞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어졌다. 그냥 안녕, 잘 가, 

 

돌아가는 버스에서 "이선균"이 자살했다고 들었다. 우리가 만나 덕수궁 들어가던 즈음에 그가 발견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이선균의 명복을 빌고, 서로가 읽은 책의 한 귀절을 보내고, 서로가 쓴 글을 바꾸어보았다. 

2호선 초록 순환선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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