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만 몇 년째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녀는 작지만,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썼다. 지금이야, 실리콘 밸리를 인도인들이 장악하다시피해서, 인도식 영어강습 학원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인도 공과 대학을 나온 이과 천재가 아니다, 67년생 보스턴 대학 영문과를 나온 여성이다. 문과 여자란 말이다. 검은 머리와 피부에 큼직한 이목구비, 이국의 향신료 향을 풍기는 그녀가 미국, 그것도 찰스강 부근 보스턴에서 버텨온 이야기들이었다.
나도 이민자라서, 나도 가난했고, 나도 촌스런 옷을 입고 다녔고, 나도 자부심 강한 부모와 다른 언어를 쓰며 살았다. 나 역시 그 시대의 다문화 가족이어서랄까, 한민족이어야 한다고, 단일 민족이어야만 한다는 말이 우격다짐같고 두려웠다.
그러다가, 작가로서 정점에 이르른 40대 인가, 돌연 이탈리아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이탈리아어를 배운단다. 이탈리아어로 작품을 써보겠다며,
나도 그녀처럼 작지만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다만 그녀의 작품보다 유머가 있었으면 했다.
한데 갑자기 그녀는 제 2외국어로, 이탈리아어 작가가 되겠다고 했다.
참, 저렇게 분위기있는 미인이, 호연지기까지 갖추면 어쩌란 말인가, 소금이라도 뿌려야 하나?
몇년 후, 그녀는 이탈리아어로, " in other words" 라는 책을 냈다. 이탈리아 어는 아예 모르고, 영어판은 없어서, 할 수 없이 이탈리아어 번역가 000 의 책을 사들고 왔다.
한데 제목이 뭔줄 아는가,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라 번역되어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직도 그 번역가를 기억한다.
저 사람의 번역책은 절대로 읽지 않겠다.
저 출판사의 책은 사지 않을테다.
그래서 빌려왔다. ㅎㅎ
학교 문법에선, "바꾸어 말하면"으로 해석되는 숙어이다. in other words.
줌파 라히리는 "다른 언어로", "다른 말들 속에서 " "내가 이탈리아어로 바꿔서 해볼게"뭐 그런 중의와 울림를 노린 것일텐데.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라고 번역했다면 그 문학적 소양을 신뢰하기 어렵다.
당연히 그 책 예상한대로 시간과, 돈, 종이까지 아까웠다.
다만 여성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무턱대로 박한 자들 편에 서지 않으려, 입을 닫았다. 물론 그녀의 자유와 용기에 대한 시샘을 있었음도 인정한다.
그녀가 이번에도, 이탈리아 어로 단편 소설집을 냈다. 로마 이야기. 50대 중반의 나와 여전히 겹친다. 선택한 타국살이, 우등생 컴플렉스로 똘똘 뭉친 이들의 근면과 여유로우면서 무료하고 공허함,
인종 차별과 갈등은 사라지기는 커녕 더 널리 교묘하게 퍼지고 있다고 말한다. 로마 자와 법, 군대를 앞세운 로마인들처럼 대제국을 만들어 가는 지금,
내가 읽은 줌파 라히리의 "로마 이야기"는 그녀의 손으로부터 너무나 멀다.
그 거리는 내가 채워나가야 한다.
" In other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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