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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s

세모의 명동 성당-

해는 일
달은 월, 
 
두 글자가, 모여서, 밝을 명이 되었다. 
 
그러니까, 명동은 은성한 불빛의 동네다. 
세모에 명동나들이를 했다.  그곳은 여러 얼굴들로 빛나고 있었다. 중동, 동남아, 유럽, 아프리카 등등 온 세계인들이 그득했다. 갖가지 외국어가 뒤섞여 들려, 마치 로마에 온 듯했고, 런던같았으며 파리인 줄 알았다. 
 
길을 잃을까, 소매치기를 당할까, 동양의 여자라 혹시 무시당할까 잔뜩 긴장한 채  떠돌던 내가 떠올랐다. 히드로 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 공기와, 냄새와 소리를 만끽하지 못했다. 그때의 유럽 도시와 지금의 서울은 닮았다. 지친 젊음과, 여유로운 중장년층으로 붐비는 명동은, 
 
해와 달이 함께 빛을 내는 동네의 성당에 간다. 
우리가 일상에서 20미터에 이르는 천장아래 설 수 있을까
우리가 일상에서, 벽돌로 쌓은 벽, 스테인드 글래스 창문, 천장서 폭포처럼 떨어지는 등, 향유과 초를 누릴 수 있을까,
파이프 오르간과, 하프, 종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그는 특별한 사람일테지.
난 지극히 평범하기에 따로 성당을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와 같은, 수많은 외국인들을 만났다. 
그곳으로 가서, 나는 온전히 여행객이 된다.
나는 관광 온 외국인들, 이주 노동자, 장애인,아이와 노인들 중 하나이자 여럿이고 또 하나였다. 
 
성당 드높은 천장으로 사람의 소리가 하늘이 되어 올라가고,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여행객들이라면  "lonely planet" 을 끼고 떠다녔다. 여행가였던 토니 휠러 부부가 만든,  여행자들을 위한 푸른 표지의 책이다. 
우린 모두 외로운 행성, 우리가 가지 않는다면 지구는 쓸쓸한 별에 지날지도, 뭐 그런 뜻 아닐까, 
우리야말로 서로를, 이곳을, 지구를 스쳐지나가는 “lonely planet”이다.
성경과 찬송은 “Lonely Planet 지구편" 부록 일지도 모르겠다. 
 
한국말이 유창하신 외국인 신부님께선 "뉘우치다"의 뜻을 알려주셨다.
잘못을 깨쳐 용서를 빌다
다시 생각하다.

나는 모르는 거 투성이다.
 
한 일용 노동자가 쓴 "바오로라는 이름으로"란 말씀의 이삭도 좋았다. 
나처럼 하잘 것 없는 사람이  받은 축복과 은혜를 감사드린단다. 
 
드높은 천장으로 사람의 소리가 하늘이 되어 올라가고,
 
세모에도  성탄절 미사를 드리러 갔다. 
 
영하 10도 추위 속 미사를 기다리며 줄을 선 와중에  밧데리가 떨어졌다. 충전할  방법을 찾는 내게 자원봉사자가, 선뜻 자기 가슴팍 속의 밧데리를 내놓는다. 
동방 박사 세사람을 주제로 한 등이 아름다웠다.  눈이 크고 얼굴이 환한 청년 둘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베트남인이라고했다. 너희 나라에도 카톨릭 신자 많니? 물었더니 그렇단다. 사진을 찍을 때 내 얼굴이 잘 나오지 않으니, 옆의 친구가 작은 전구를 내 얼굴에 비춰주었다. 명동에서는 서로를 밝혀주고 빛내주려 한다. 
 
그들을 도울 길이 없을까, 경내는  이미 자리가 차서 앞쪽으로 가며 자원 봉사자님을 찾았다.  저 두분은 베트남에서 왔다고, 자리 부탁한다 말씀드렸다. 나도 그들처럼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지. . 이방인은 물론이요 가까운 이들에게도 따뜻하고 친절하며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가장 훌륭한 절은 "친절"이라시던 법정 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명동 성당 100주년 기념 미사에 법정스님이 "천주님의 뜻으로 여기 서게 되었다”셨다. 천주교 신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미소로 맞절을 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먼저 길상사 개원식에 자리하셨고, 
두분 다 이제 별이 되셔서 해와 달과 더불어 어둠을 거둬가시겠지. 
 
미사를 마치고 나오다, 명동에서 불을 꺼버린 "백병원"도 들렀다. 
그 앞 정거장 이름이 "안중근 활동터"이다. 세상에 도마 안중근은 겨우 서른 넘어 그 슬픈 눈을 밝히며 당당히 갔다.
예수보다 어린 나이다. 
수염 자국인 줄 알았는데,   고문하느라 이빨을 뽑은 흔적이란 걸 알고 마음이 깜깜해진다
 
가만있자 내가 어제 무엇을 빌었던가, 해와 달과 별들을 밝혀주는 동네의 성소에서,
 
 
일용할 빵을 ,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방인 이란 걸,
잠시 스쳐 지나간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고 신실하며 아름다운 자국을 남길 수 있도록
 
#명동성당#lonely planet#여행자#명동#세모#기도#명동성당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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