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색시였을 때부터 예술의 전당 앞 ㅇㄱ아파트를 점찍었다. 이유는, 예술의 전당과 가깝다는 것, 그리고 숲이 우거졌다는 것,
해지는 여름 저녁, 슬슬 걸어나가 야외 무대 공연 서서 보고 돌아오는 노년을 꿈꿨다.
나는 공연장에서 파는 샌드위치를 보면 아직도 설렌다.
열심히 일하고, 바쁜 시간 쪼개서 극장으로 달려가, 선 채로 샌드위치 먹은 후,발레를, 오페라를, 연극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꿈꿨고 난 이루었다.
열망은 결정이 된다..
서예 박물관에서 방의걸 "생성의 결, 시간을 담은 빛"이란 전시회를 한다.
제목이 너무 거창해서 볼 마음이 없었다.
새마을 운동 본부장의 축사같아서,
그런데 무료라서,
그리고 화백의 글이 나를 사로 잡아서 보러갔다.
미대를 지망했을 때, 내 아버님 말씀...
"세상에 큰 일, 작은 일, 많은데 하필이면 그림쟁이 될려는 것이냐?
그림쟁이는 밥상에 밥그릇, 국그릇, 여러 그릇 중에 간장 종재기인 것이야
하기는 간장 종재기에 항상 간장이 채워져 있으면,
빈 국그릇, 밥그릇보다는 나을 것이니, 열심히 하거라”
지금도 그 말씀 귓가에 맴돌고,
항상 채우려는 노력으로 열심히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아, 아버지 간장 그릇 채워져 갑니까? 아....
2층, 역시 별로였다. 윤슬로 보이는 대작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동양화같은데 뭔가 내 눈을 끄는 게 없다.
겨울 나무, 산, 숲, 비 내리는 풍경, 다들 어디선가 본 듯했다.
3층으로 올라갔다. 전시가 거의 끝나가는 곳, 소품을 모아놓은 데서 걸음을 멈추었다.
까치밥을 먹고 있는 새부터다.
그 다음은 물고기들이었다.
장욱진 전에서도, 물고기를 눈여겨봤다. 물고기로서 자신만의 선과 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까,
방의걸의 물고기는 종을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흐름과 기운은 확실히 느껴졌다. 화면 분할도 시원했다.
그 물고기들을 본 후 다시 작품들을 보러 2층으로 내려갔다. 왠지 화가처럼 보이는 팔순 어르신이 계신다. 여쭤보니, 방의걸 선생님이시란다. 인사드렸더니, 500원을 달라셨다. ㅎ
아주 작고 마르신 화가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시더니 작품 앞에서 숨을 꽤 오랫동안 몰아쉬신다.
한 숨 돌리고 천천히 말씀하셔도 되련만 쉬지 않고 설명하신다.
물고기 등이 내가 풀어야할 금석문 같아 좋았다고 말씀드렸다
화가에게 모든 대상은 작품의 주제이고, 이건 한지를 구부려서 그런 효과를 낸 것이므로 얼마든지 갖다 쓰라셨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를 표현하셨다고 한다.
또 다른 소품을 가르키며, 무슨 고기인지 모르겠으나 생명의 힘을 느꼈다고 했다.
눈을 반짝이시더니 실은 압지라고, 붓을 닦는 종이에 그은 선이 마음에 들어, 2개 더 그으셨단다
, 그 후, 눈을, 그러니까, 정말 화어 점점 ㅎ 하셨더니, 이런 그림으로 나왔다셨다.
선생님, 그건 우연이 아니죠. 실은 선생님의 평생에 걸친 화력이 압지 위에서 꽃을 피운 거죠.
만면에 웃음을 띄시고, "맞아요. 뭐라도 하다보면, 우연찮게 나오기도 한답니다. 열심히 한다고 또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나더러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신다.
작가라고 했더니, 눈이 화등잔만해지신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림으로 그리면 직관적으로 이해될 것을 글로 그려야 한다고 , 요즘은 글로 소리났으면 싶다고는 속으로 말씀드렸다.
간장 종재기에 담긴 물고기를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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