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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s

길상사의 목소리

10년만에 길상사에 갔다.
해가 떨어지긴 전, 11월이 오기 전, 겨울이 오기 전 길상사를 보고 싶었다.
삼각산 길상사에 들러 성모 마리아를 닮은 보살님을 만났다.
극락전을 지나쳐 진영각으로 갔다.
법정 스님께서 하루도 주무시지 않으셨다는 거처, 참 진. 그림자 영
 
벌써 사위는 어둑신했으나 온돌 바닥은 따끈했다. 
맨 중앙의 스님 영정은, 그 분을 잘 모르고, 그 분을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가 그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신, 스님께서 평생 기워 입으신 저고리 행장이 반갑다.
세수 대야, 의자, 탁발, 세면 도구, 원고지...
음악을 즐기셔 들으시다 이또한 집착이라 하여 몇 번씩 던져 부셨다는 라디오,
그 모든 것들이 귀하디 귀하다
스님의 글씨는 힘차고 단정하며 거침없이 자유로우나, 옹이가 져있다. 
 

한지가 발린 문으로 빛과 바람과 밤의 소리들이 들어온다.
스님께서 법문하실 적, 전국서 몰려온 신자들이 멀리서라도 뵙고 싶어해 문을 살짝 여시고 눈인사를 건네셨다는데, 
난, 저녁 내내 홀로 그 분 품에 지내다 온 셈이다.
 
진영각을 나오려는데 종소리가 들린다.
서울 한가운데 산사에서 들리는 종소리, 먼 북 소리,
오늘은 보름이기도 하고, 
서울 한 가운데서 수백명의 젊은이들이 생때같은 목숨을 잃은지 1년 되는 날이라서 일까, 
혼을 달래는 소리같다.
한데 쇠소리가 섞였고, 3-4미터 가량 퍼지다 무겁게 아래로 깔리는 음이었다. 
종루에 가까이 가니 한 스님이 온 힘을 다해 종을 치고 계신다.
몸이 휘청대며 종 쪽으로 밀려달려갈 정도로
 

어둡고 차가운 공기를 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극락전에 들어간다. 
천장에는 불자들의 이름과 소원을 적은 연등이 빼곡하다. 분홍빛 끈들이 얼마나 많은지, 
살고자하는 의지, 욕망, 에너지가 얼마나 치열한가 새삼 고함소리가 들린다. 
벽에는 망자의 극락 왕생을 비는 초와 사진이 가득하다. 
천주교 신자이나 부처님께 합장하고 거푸 배를 올린다. 이윽고 덕조 스님이 오셔서 목탁을 두드리시며 경을 읇조리신다.
 
세상에 난, 목탁 소리가 이런 줄 미처 몰랐다.
나태와 교만과, 무지, 타성을 박살내려는 소리같다.
모양도 사람의 두골을 닮은 듯한데,
나더러 정신을 차리라고
세상 소음에서 벗어나 집중하라고
호통 치는 듯 했다.
동시에 아름다웠다.
 
필경 승려 중 목탁을 잘 두드리시는  분도 있으리, 법정 스님처럼 문재가 빛나는 분도 계시듯,
 
관세음보살을 되뇌는 신자들에 섞여 예불을 보면서 여기 역시 인도의  갠지스강이구나 싶었다. 삶과 죽음, 노래, 염불, 대원각, 사찰, 성과 속, 그 모든 것들을 다 뒤섞어 안고 흘러가는 갠지스 강, 
 
그러니까 법정스님은 우리에게 강가를 흘러보내시고 홀연히 그 강 위로 떠내려 가셨다.
극락전을 나와 길상사 칠층 탑을 돌았다. 석탑 앞에선 중년의 남여가 사업과 가정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이미 사방이 깜깜했고, 북악 수퍼 지나, 성북 성당 거쳐 성북동을 걸어 내려왔다.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만큼 큰 집과 하꼬방들이 뒤섞인 동네다. 
선잠로가 끝나는 골목에"밀곳간"이란 빵집이 보인다. 세상 고운 상호다. 밀 곳간이라니, 그곳에서 한참 고민하다, 딱 하나만 사기로 한다. 나뭇잎 모양의 파이, 맛있다면 하나만 산게 아쉽겠지, 그래서 더 잊을 수 없을 테지.
딱 하나의 빵으로 윤회하신 법정 스님. 
#길상사#법정스님#목탁#종#밀곳간#맑고향기롭게#무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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