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러 다니는 건물 1층에는 빵가게가 있다.
필라테스 마치고 지나가는 길, 빵 냄새는 얼마나 유혹적인지.
방금 구워낸 빵에서는, 아가처럼, 고소하고 향긋하며 달큰한 냄새가 난다.
뜨거운 커피와 함께라면 모든 것이 다 녹아 사라질 맛이리라,
모든 것을 다 잊고 오직 지금에만 몰두할 맛이리라,
비라도 내리면, 열이 밀가루, 버터, 우유를 부풀려 구워낸 향이 더욱 짙어진다.
소공녀 세라처럼, 성냥 팔이 소녀 처럼, 빵가게 진열 유리창에 매달려 한참동안 바라보기만 한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그토록 먹고 싶어한 "흰빵"처럼 절하게 바라본다
우리로 치자면, 늘 꽁보리밥만 먹었으니 흰 쌀밥 먹는게 소원이었겠지. 하이디도
얼마든 살 수있는데, 아니 가게 빵들 다 살 수 도 있지만,
일년에 몇 번, 무슨 기념일이나 생일 기다려야 한다. 하이디가 흰 빵을 꿈꾸듯
늙어 소화력이 떨어지기도 했고 살찔까봐 두려워
남편은 당뇨로 식단 조절 해야하기에
그저 그림의 떡이다.
대신, 그림의 떡, 그 향만이라도 실컷 맡으며 지나간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에게 간곡히 고하고 싶다
빵을 좋아한다면 젊을 때, 먹고 싶을 때 아끼지 말고 마음껏 드시길.
부디 돈을 빌려서라도, 많이 드시길
머지 않아, 아무리 먹고 싶어도, 아무리 돈이 흘러 넘쳐도 먹지못할 날들이 닥치나니.
빵 굽는 냄새를 맡고서 나는 "빵을 굽는 타자기" 앞에 앉는다.
우선 손을 씻고 머리를 단정하게 올린다.
앞치마를 두르고 정좌한다.
자판 위에 손을 올린다.
매번 재료를 조금씩 바꿔가며 빵을 굽는다.
어떤 맛일지, 아니, 먹을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그냥 가난한 마음으로 반죽을 한다.
때로는 거칠게 간 밀가루와 물만으로
어쩔땐 호밀, 탕종, 우유를 넣으며 북구 유럽인이 되어
가끔은 밀가루, 설탕, 버터의 비율을 1:1:1로 맞춰서 진득하고 달콤하게
아예 올리브유를 들이붓다시피하여 에로틱한 반죽을 주무르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빵굽는 타자기"를 들였다.
자판 앞에 앉아 매일 빵을 굽는다.
그 누구도 레서피를 가르쳐 줄 수 없다.
당연히 냉동 생지를 사다가 굽기만 할 수도 없다.
그냥, 내가 가진 모든 것들, 기억, 상상, 소망 들을 모아서 섞고
부풀어 오르도록 휴지기를 두었다가,
적당한 습도, 온도를 맞춰 내어
불을 올려서, 구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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