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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s

우륵을 들으며 걷다,

눈이 푸지게 내렸다. 
눈을 맞으며 걸었다.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며 걷다가, 아니야, 눈 소리를 들어야지 싶어, 이어폰을 뺐다.
 
눈이 내리는 소리,
눈이 날리는 소리,
눈이 쌓이는 소리,
눈이 녹는 소리,
눈이 바스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다시 임윤찬의 연주를 들으며 걸었다. 

반클라이번 콩쿨 우승 후, 
그는 "우륵의 ‘애절하지만 슬프지 않은(哀而不悲)’ 가야금 뜯는 소리를 상상하면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고 답했다.  
콩쿠르 파이널인 이 곡을 “어떤 울분을 토한 다음에 갑자기 나타나는 어떤 우륵 선생의 어떤 가야금 뜯는 소리가, 그런 부분이 있는데, 모든 것을 초월한 상태에 대한 이야기(로 담아냈다)”라고 했다.
18살 소년, 임윤찬은  우륵의 "애이불비"로 피아노를 풀어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대가야의 가실왕이 “여러 나라의 방언(方言)이 각각 다른데 그 성음(聲音)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라면서 우륵에게  12곡을 만들게 하였고, 다시 신라 진흥왕이 12곡을 5곡으로 정제했다고 한다.
우륵의 음악은  “즐겁지만 넘치지 않고, 애절하지만 슬프지 않으니 가히 바르다고 하겠다(樂而不流 哀而不悲 可謂正也)”고 전해진다. 
 
전세계 음악 전문가들이 모인 프레스 룸에서 임윤찬은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로 "우륵"을 꼽았다. 
그들은 필경 베토벤이나, 바흐가 아닌, "우륵"을 들어본 적조차 없었으리,
누구에겐가 물을 수도 없다. 
기사를 쓰면서, 그들은  다시 한번 더 "우륵"을 발음해보며 철자를 확인하고, 검색창을 띄웠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륵의 소리는 남아있지 않다. 
우륵의 어떠한 소리도, 기록도 “애절하지만 슬프지는 않게 “ 사라졌다고 한다
더군다나, 임윤찬은 가야금도 아닌 피아노란 서양 악기 연주자이다.
 그런데 18세 소년 음악가 임윤찬은 1500년 전, 대가야에서 신라로 망명한 음악가 우륵을 다시 살려냈다. 
 
 
우륵의 음악을 "애절하지만 슬프지는 않게" 피아노로 들려준다. 
 
"저는 음악의 본질이 슬픔이라고 생각해요. 음악 때문에 우리가 위로를 받는 걸, 그 음악 안에 슬픔이 있기 때문인거 같아요"
 
서울에 눈이 자주 많이 내린다.
눈이 내려 사위가 고요해지면 들리지 않던 소리가 비로소  귀에도  사각사각 내린다. 
 

#임윤찬#나혼자친다#반클라이번콩쿨#우승수상인터뷰#우륵#가야금#눈이와요#김광진#애이불비#눈길걷기#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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