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앞에는 시계탑이 있다. 그 시계를 확 돌려 "벨 에포크"시대로 갔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는 자정 종소리와 함께 마차를 타고 벨 에포크 시대로 돌아갔었지.
벨 에포크로 간 건 순전히 잘못 예약했기 때문이다.
아침새 예약하면 반값이라길래, 덜컥 예약부터 했는데, 파리, 이쁜 그림, 인파 ,
내 취향이 아니라 망설이다 할 수 없이 다녀왔다.
너무 이쁜 그림이라, 이미 사람들의 박수 소리 요란한데 굳이?
아이돌 그룹 두세번째 멤버같은 그림이라 가고 싶지 않았다.
그날 예술의 전당에서는 34년생 프랑스인 미셀과 38년생 한국인 방의걸이 동시에 시계를 돌렸다.
미셀은 눈오던 파리로, 방의걸은 비 긋던 시절로
나는 사람이라 팔이 안으로 굽는다. 팔을 안으로 굽힌 채 두 화가를 봤다.
사실 파리를 그린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미셀은 아버지의 눈으로 눈을 그리고 있다.
1930년대의 파리 사진을 구해서 그렸을까? 영화나 자료가 많겠지.
그는 어째서 눈이 내린 후의 풍경은 그리지 않았을까, 그리는 일 외엔 어떤 노동도 하지 않아서겠지.
그림에서 , 대상을 생포한 느낌이 전해질 때 나는 매료된다. .
그 주제나 소재가 무엇이건 진짜 거대하고 사나운 날것,
그것의 급소를 찔러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멀쩡하게 보여주는 것,
요세미티 국립 공원처럼 그렇게 큰 주제를 가지고도,
화제와 화면을 장악하는 힘을 데이비드 호크니에서 봤다.
그런데 들라크르와의 파리는 그냥 이쁜 그림이었다.
에펠탑이 좌우로 길게 레이저 뿜어내는 모습 위트넘쳤으나
파리 관광청이 좋아하지 싶은 분위기 난 지루했다.
대신 그의 그림에서 나는 ,오히려 글의 힘을 느꼈다.
이 세상에 둘 뿐
선량한 의사
짧은 설렘
저를 믿어주세요.
안녕 파리
좋은 의사
저에게 꽃을 사주세요
살았다.
야반 도주
22번 버스
85번 버스
위대한 파리
파리 조감도
그때를 기억해
바른 자세로 고요히
숲에서의 조우
금성,
착한 의사......
이런 그림의 제목이 돋보였다.
시 같았고 화가를 돋보이게 했다.
그의 그림은 "Untitle" 이 어울리지 않는 그냥 이쁜 그림이었다.
untitle 이란 관객이 울림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말이다.
파리의 버스,
손으로 켜는 가스등,
왕진 가방을 들고 다니는 의사,
말과 마차,
전나무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6. on the road는 괜찮았다.
자동차 전조등이 내는 빛, 그 문명 빛으로 인한 야생 동물과의 조우, 인공의 빛을 본 자연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풍경,
특히 겨울 숲에서 그림자 져서 마치 데칼코마니 같던 거, 나무의 뿌리만큼 깊었던 그림자들, 흰 그림자들,
그러니까 나는 미셀이 그린 빛보다는 오히려 그림자들에 경도된 셈이다.
또,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를 꼭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휘황한 파리를 닮아가려고 무척 애쓰는 서울의 야경이 떠올랐다.
눈 내린 후, 서울의 거리는 그 눈이 녹아 온통 질척거리고 있었다. 방의걸이 그린 윤슬이나 비와는 달랐다. 겨울 풍경도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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