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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s

기차의 역사

어릴 적 아이는 그렇게도 기차를 좋아했다. 지하철을 타면서도, 놀이공원에 가서도, "기차" "기차" 하면서 내내 눈을 빛냈다. 
기차는 자주 못타니 지하철이라도 싶어서 2호선 녹색 순환선을 몇 바퀴씩 돌던 추억도 있다. 
모노 레일 앞에서, 공룡 바라보듯, "기차" "기차" "기이이이이이이이차"라고 좋아하던 아이는 큰 머리, 짧고 통통한 팔 다리, 토실한 엉덩이, 둥글고 귀여운 어깨를 한 장난꾸러기 꼬마 기관차였다. 자연스레 꼬마 기관차 "토마스"를 좋아했다. 몸은 기차 , 얼굴은 사람이라 어떨때 좀 무섭다면서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기차놀이를 하곤 했다. "기차길 옆 오막살이 아이"는 곧 "세계로 가는 기차"를 탄다
 
세계로 가는 기차 타고 가는 기분 좋지만 그대 두고 가야 하는 내 마음 안타까워, 
 
들국화의 노래, 나도 "세계"로 가기 위해 그를 두고 떠났다.  
1991년 물금 열차 탈선 사고로 많은 사상자들이 났을때 그는 나를 영영 잃었을까  마음 졸였다고 한다. 아니 물, 금할 금, 어째서 마을 이름이 저럴까 하면서 지나쳤는데 곧 사고가 났다. 나는 다시는 그 역을 지나지 못했다.  영영 잃은 것은 나다. 
나도 세계로 가기 위해 그를 떠나왔다. 그는 나를 배웅하러 기차역에 꼭 나왔다. 아니, 아쉬워서 서울까지 같이 타고 오기도 했다. 나를 무릎에 앉히고 서울까지 왔다. 가난한 난  늘 무궁화호를 타고 다녔는데 그는 꼭 나를 새마을 호에 태워 보냈고 늘  데리고 왔다. 더 나중에는 고속열차의 특실에 혼자 앉히고 싶어했다. 
기차에서 멀어지던 내 모습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줬다. 초록 드레스를 입은 나의 뒷모습을 , 
 
그러다가 너무 뜨거웠던 우린 솟구쳐 대기 중으로 사라져버렸다. 마치 증기처럼,
물끓는 주전자의  뚜껑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제임스 와트는 증기 기관을 만들었다고한다.  펄펄 끓는 물방울이 쇠덩어리를  움직이면서, 공간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단축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결과,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문명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누가, 그런 증기 기관을 가마솥이랑 이어줬던가,  
끓이고, 압력을 높인 후, 추가 울리고, 불을 끄면서 서서히 그 압력이 빠질때까지 뜸을 들이는 압력솥 말이다. 
20년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살림 좀 한다하는 여인들은 다들 독일제 휘슬러 밥솥을 샀다.
한데 휘슬러는 휘파람일까, 휘파람이  부는 것들일까? 그 이름은 피리부는 사나이일까, 어쨌거나 운치있는 이름이다.
그 전에는 일본 전기 밥솥의 인기도 대단했다. 코끼리, 조리 루시같은,
지금이야, 전기 밥솥하면 마데인 코리아 , 쿡쿠 그러니까 뻐꾸기가 세계를 휩쓴 지 오래지만, 풍년 압력솥이 전국을 제패했으나, 
 

오랜 수험 생활 후 시험에 합격해서 받은  첫 월급으로 남편은 지름 20cm  풍년  압력솥을 선물했다. 
상표도 참 마음에 든다. 풍년이라니, 도저히 번역할 길이  없으므로 최고의 브랜드이다. 
짧은 시간, 고온 고압으로 조리하여 영양소도 에너지도 시간도 손실을 최소화한  압력솥
독일제에 비하면 이십 분의 일 가격에, 크기도 앙증맞고, 무엇보다, 나는 그 홀가분함과 낯익음이 좋았다. 반세기 넘은 우리 기업인데다, 믿을 수 없이 저렴한 가격에,  그저  알짜인 게   내 남편과 꼭같았다. 
누구나 갖고 싶어하던 커다랗고, 무겁고 비싼 휘슬러가 떼제베라면 우리집 풍년 압력솥은 소래포구의 협궤 열차같았다. 
 
밥 짓는 냄새가 나면서 추가 돌아가기 시작할때 나는 어김없이 기적소리를 들었다. 덜컹덜컹 덜컹, 바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차체가 움직이며 내 옆으로는 풍경이 지나간다. 사람이 뒤로 간다. 검은 머리카락과 탄탄한 허벅지가, 빛나던 눈동자가  뒤로 사라진다. 실제로는 내가 움직인다는 데, 그러면서, 벌써 25년을 뒤로 넘겨버렸다 , 풍년 압력솥은 
 
쌀이 밥으로 바뀌어가는  소리와 냄새가 온 집안으로 번지며  사람을 불러모은다. 한 김이 빠지면서, 서서이 뜸이 든다.  이윽고 뚜껑을 열면, 뜨거운 김이 확 올라온다. 뜨거운 밥이 사람을 먹인다.
 
모두  다 물에서 나왔다. 물이 끓으면서 시작된 일이다.그 누구인가, 내 물을 덥히고 끓게 하여, 들썩이다가 큰 압력으로 치솟아, 밥을 짓고 기차를 타게 한 그는... 그는 누구인가,  
 
#풍년압력솥#휘슬러압력솥#코끼리밥솥#쿠쿠#떼제베#무궁화호열차#새마을호기차#물금역열차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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