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은 영하 10도의 한파다.
거실에는 햇살이 흘러 넘친다, 창의 그림자도 겨우 버틴다.
바닥의 퀼트 러그까지 햇살이 흘러 넘친다.
침대는 절절 끓는다.
뜨거운 물로 데우는 장판이란다.
연탄불이 괄한 아랫목같다.
이런 "오후만 있던 일요일"같은 날에는 집에서 영화를 본다.
"사치와 평온과 쾌락"을 마음껏 누린다.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천재였고, 남여 모두를 사랑했으며, 극강의 에너지를 가졌던 음악가란다.
일본 출신 유명한 분장가가 브래들리 쿠퍼를 번스타인으로 완전히 탈바꿈 시켰다고 한다.
어떤 이는 아날로그의 승리라며 감탄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이미 브래들리 쿠퍼는 충분히 번스타인 같은 데가 있다.
게다가, 외모가 닮을수록, 배우의 연기는 , 더 가려지기도 하는 법이니까,
때로는 브래들리 쿠퍼와 번스타인이 팽팽하게 맞서야 더 재미있는 이야기 나올 수 있다.
캬라얀과 번스타인 처럼, 레나드과 펠리시티 처럼 첨예하게 맞서고도, 아니 맞서야 인생과 닮았다.
음악을 잘 모르고, 번스타인은 더 모르는 내게 별로 재미없는 영화였다.
젊은 시절의 나라면, 누군가 추천했으니까, 예술 영화라니까, 혹은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시간과 돈을 내줬으리라.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겐 시간과 집중력과 호기심 그 모든 것들이 현저히 쪼그라 들었다. 나이든다는 건 이런 수축과, 인색함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번스타인이 평생 누린 "사치와 평온과 쾌락"을 끝까지 봤다.
번스타인의 복잡다단한 사생활 보다는 195-60년대의 뉴욕, 웅장한 콘서트홀들, 교외의 미국 저택을 보는 재미로 봤다.
내게 영화는 단돈 만원짜리 패키지 여행이다. 그들의 뜻대로 신속히 움직여야 하지만 저렴한 값에 꽤 많은 것을 얻어갈 수있는 구경거리다.
"사치와 평온과 쾌락" 속에서 오만해진 이들의 전기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을 보면서 이순신의 "노량" 등 전기 영화를 생각했다.
"노량" "명량" "한산" 등, 장군의 대첩만으로도 이미 여러 영화가 나왔고, 확신컨데, 영원히 계속될 거 같다.
반면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글쎄..
자신이 누린 순간의 "사치와 평온와 쾌락"이 아닌, 남에게 값진 무엇을 얼마나 오래동안 주었는가에 그 답이 있다.
늦깍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변방을 돌다가, 이미 국운이 기울어갈 때, 보잘 것없는 군비로, 몇 백배의 왜적을 물리친 이,
우리 산하가 내는 소리에 귀 기울여, 때로는 진양조로 가끔은 휘몰이 장단으로 , 자진 모리 , 중모리 등 맞춤한 장단으로 지휘하셨던,
장군이야말로 최고의 지휘자아니셨던가, 임진 왜란의 마에스트로로 전장의 바다를 사수하셨으니
몇 백년 동안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가 되어 불사 불멸이 되신 이순신 장군,..
한겨울, 햇살 받으며 따끈한 침대속에서 번스타인의 음악과 영화를 보는 이 "사치와 평온과 쾌락"도 실은 그 분들이 내가 아낌없이 나눠준 것들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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