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진달래가 필 텐데요.. 그 꽃 따 화전을 만들어 당신께 드리고 싶어요. "
소설 "토지"의 별당 아씨가 지리산에서 죽어가며 구천에게 말하듯,
"그 계절에 피는 꽃을 보고 그 절기에 먹어야 하는 음식들을 먹으며
당신이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고 찾아야 할 작은 행복들을 놓치지 말아줬으면 하오. "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북녘의 리정혁이 남조선 윤세리에게 서신 보내듯
봄 여름 가을 겨울 그와 화전을 비롯한 계절 음식을 나눠먹으며 살 줄 알았다 . 결혼한다면
내 짝은 라면을 아주 좋아한다.
우리 사이에 "라면 먹고 갈래요?"는 그러니까,
"졸리니 아침을 알아서 드세요," 내지 "마땅한 반찬이 없으니, 어떡하죠." 뭐 그런 뜻이다.
마음에 들지만, 망설이는 이성을 내 쪽으로 당겨오려는 수작이 아니다.
반면 내게 라면이란 아주 가끔 먹는 별미라, 절대로, 대충 먹을 수 없다. 약간 꼬들한 면발이어야 하고, 짭조름 해야 한다. 떡국떡과 버섯을 넣어, 파 송송, 계란 탁 등등,
라면은 너무나도 일용할 양식인 동시에 여행자의 음식이다.
라면만 있다면 거의 모든 여독이 다 견딜만 해진다.
뜨거운 라면 국물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한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진탕 술을 마신 후 라면을 먹으며 우린 기꺼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 올 수 있다.
철이랑 매우 닮은 남자랑 결혼해서일까, 물론 .내가 메텔을 닮은 것은 아니지만, ㅎ
결혼이란 은하철도 999를 타고 떠나는 우주 여행이 아닐런지 싶을 때가 있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정거장에 햇빛이 비쳐지네 ~ 만화 주제가부터 특이한 만화영화였다.
하늘을 달리는 기차, 기계인간의 몸을 받으려고 우주를 여행하는 철이, 가엽게도 엄마를 잃었다지. 그 철이에게 기차표를 구해준 신비로운 메텔,
춥고도 텅빈 객실에 승객은 거의없다. 투명인간같은 차장만 이따금 나타난다.
세기말적이고 철학적이라 어른들을 위한 만화영화이다.
은하 철도 999 종착역 메가로폴리스에서는 기계 인간들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서 자살하거나, 괴로워하다 반란을 일으키기도 한다는데,
이따금 철이와 메텔은 라면을 주문해서 먹는다.
그 외 어떤 음식도 먹지 않는다.
그 황량한 객실에서 라면만 매번 담음새를 바꿔가며 등장했다.
라면은 참으로 여행자의 음식이다.
덜컹거리는 바퀴와 기적 소리 들린다.
차창 밖의 어둠과 다가오는 불빛을 보면서, 라면 한 그릇을 나눠 먹고 있다. 그 둘은
지금 우리가 탄 열차도, 어떤 별로 가고 있다.
우리 둘은 함께 라면을 나눠 먹으며 그 별로 가고 있다.
은하철도 999를 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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