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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s

뉴욕의 피아노맨

현우야 !

.

병원 실습에 쓸 가운과, 청진기를 샀다며. 

청진기를 귀에 걸고, 내 가슴에 대보며 웃었지

그리곤 다시 내 귀에  귀꽂이를 넣고, 고무관으로 "사랑한다"고 천둥처럼 말해서, 놀래켰더랬지. 

 

현우야, 중 3때 피아노 전공하러 서울 예고 가고 싶다고 했던 거 기억나니? 

아빠가  무슨 소리냐고, 아예 대꾸도 않으시던 거

엄마도 전혀 뜻밖이라, 일단 네가 얼마나 피아노를 사랑하는지를 보자고 했던 거, 

막바로  마음 속으로 음악 전공은 도대체 어떻게하는 걸까, 싶더라, 

 

엄마는 네가   악기 하나는  능숙하게 다루고 평생 연주 할 수 있기를 바랬어, 

수영, 자전거, 축구, 농구 등의 스포츠를 열렬히 즐기고 ,

넓이는 모르겠으나, 깊이있게 독서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랬단다. 

 

넌 7살부터  김재경 피아노에 다니기 시작했지.  성실하게 다녔고, 악보를 잘 읽었으며, 늘, 그랜드 피아노에서만  치려고 했다지. ㅎ초등학교 2학년 때에는  연미복 입고 대회나가  특상을 받고 자랑스러워했지. 이화 대학에 가서 흑건을 연주했던가. 

차이코프스키나, 말러 곡을 치고 싶다면서, 악보를 구하러 다녔어,

엄마가 피아니스트인  친구네 집 가서, 피아노 구경하고 치고 온 적도 있고 말이야, 

 

게임에 빠져서, 피시방에 살다시피할 때도  계속 피아노를 쳤어. 

어느날 네 피아노를 갖고 싶다고 했어

디지털 피아노가 아닌 업라이트로 말이야, 

엄마는 그때부터 피아노를 찾아다녔지.

전해들은 바로  IMF전 영창 피아노가 좋다고 하더라, 

중고 피아노를 사야 한다고, 

종로의 악기상도 여러번 갔단다.

너는 야마하를 사고 싶어했지만 모두들 반대했어, 

너무 비싸고 둘 데도 마땅찮은 데다, 생각보다  치지 않을거라고, 분명히 빨래 걸이나, 라면 받침대가 될거라고, 말이야. 

너는 그렇지 않다고 했고

호르겔 피아노니, 가와이 같은 일본 피아노도 그때 처음 구경하러 다녔단다. 

 

우여곡절 끝 영창 피아노를 샀을 때 넌 실망한 얼굴빛이 역력했단다. 

네가 원하던, 야마하도 가와이도 아닌, 초라한 피아노라서, 

그래도 넌 참 꾸준히 피아노를 치더라, 

한데  피아노를 다시 팔던 날, 너는 그다지 서운해하지 않더구나, 

 

 

네가 원하는 피아노를  선뜻 사주질 못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았을까 싶다. 

아니,지금에 와선,  너와  피아노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걸  후회스럽구나, 

 

 

 

네게 좋은 피아노를 사 주지 못한 것 보다, 네가 내던 소리를 귀기울이지 못한 게 안타깝다. 

 

너는 눈과 귀 그리고 혀가 누구보다 예민해서, 아주 미세한 차이도 잘 구별했다. 

엄마도 참 여러대의 피아노를 만났지만, 어찌 너에 댈소냐,

피아노 학원만 해도 얼마나 오래 많이 다녔는데, 말이다. 

 

훗날 대학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네가 독주할 때 , 아, 꿈이 이루어지는구나 싶었다. 

 

10년 전 우리가 뉴욕에 갔을 때 기억나니.

카네기 홀 지나던  거리에 스타인 웨이 매장이 꿈처럼 나타났고,

네가 자석처럼 끌려 들어갔던 거, 

 

그 당시 온 세상, 꿈의 상점은 단연 애플 스토어였지만, 

 누구나 다 뉴욕의 애플 매장에 가보길 소망했지만  

넌 스타인 웨이 홀 앞에서 가장 반짝거렸다. 

스타인웨이 가게에서 피아노를 하나하나 보면서 다가가 건반을 누르다, 정말로 소리가 나자, 화들짝 놀라던 소년 

대가들이나  치는 피아노를 보면서 눈이 동그래져서, 스타인웨이 사이를 뛰어다니며 어쩔 줄 몰라하던  내 아들 .

 

바로 옆에선, 눈처럼 희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세이블 코트를 입고,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금발 여인이 아들과 함께 악기를 고르더니, 곧바로 주문하더라, 맞춤이어서인지. 주문서는 또 어찌나 복잡하고 길던가, 

 

그때는 우리가 스타인 웨이 피아노를 살  거란 상상도 못했기에, 

사실 난 스타인 웨이 피아노도 잘 몰랐기에, 

네 벅참과, 놀라움과 환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 미안하다.

사진 한장도 남기질 않았더라, 

엄마는 네가 피아노 맨이란 걸 아예 몰랐던 거지.

내가 보고 싶었던 뉴욕만, 내가 보고 싶었던 아들만 봤던 거지. 

돌이켜보니, 엄마는 얼마나 가난한 사람이었던가, 부끄럽기까지 해. 

네 마음을 읽고 받아줄  여유가 전혀 없는 엄마야 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거지. 마음과 영혼이 말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엄마는 아예 하루종일 너와함께 그 매장에 머무르겠다. 아니 그 다음날도 또 들르겠다. 

UN본부 니, MOMA, 윌리엄스 버그가 대수냐, 

스타인웨이 홀이 여기 있는데 말이다. 

네가 피아노를 그리 사랑하는데 말이다. 

네가 바로 엄마의 피아노였는데 말이다. 

 

너는 결혼하면 방음벽을 두른 피아노 방을 만들고 그랜드 피아노를 두겠다고 했다. 

네가 꿈꾸던 피아노가 무엇이건, 드디어, 넌 진정한 피아노 맨이 되겠지. 

 

그런데 현우야, 

넌 네가 만난 피아노 보다 더 많은 피아노의 소리를 듣고 조율하며 연주하며 살아가겠지. 

사람의 몸이 마음이 인생이 영혼이 피아노일 테니까, 

어쩌면 그때 우리의 가난이 네게 흡족한 피아노를 주지 못해 네가  더 많은 피아노를 만난 건 아닐까 싶기도 해. 

 

흰 건반과 검은 건반 사이를, 

음표과 음표 사이를 

소리와 침묵 사이를 건너가던 

나의 피아노맨, 현우야. 

사랑하는 현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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