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거리에서

증명 사진

거의 30년만에 증명 사진을 찍었다. 
주민 등록증, 운전 면허, 여권 갱신위해, 증명사진, 여권 사진을 찍었다. 
 
맘 까페며 주부 까페, 대학가에서 추천하는 곳으로 골랐다. 
어쩌면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머리를 감고 화장도 적당히 했다. 
3대째 사진관을 운영한다는 곳이었다. 
 
모든 것을 사장님이 알아서 하신단다. 
원본을 보니, 세월을 정통으로 맞았구나 싶었다.
좌우 대칭이 맞지 않고, 눈은 작아지고, 살은 쳐지니 이중턱에, 얼굴에는 잡티도 한 가득이다. 
목은 주름이 선명한데다 어쩐지 굵고 짧아진 둣하다. 
 
사람들이 2번 놀란단다. 증명 사진을 찍은 후 놀라고 보정 후 달라진 모습에 더 놀란다신다. 
 
사장님은 지우개 같은 걸로, 쓱쓱싹싹 지우신다.
쳐진 턱을 쳐내고(양악 수술이네), 눈꼬리를 올리고(상안검인가), 잡티를 다 지우고(울세라, 레이저 시술이네) 눈썹과 머리카락은 아예 지우고 새로 그린다(모발 이식수술이군), 어깨와 목도 쳐낸다(이건 무슨 수술인가…)
그러니까, 나는 삽시간에 전신 성형을 받는 셈이다. 
 
내가 얼마나 놀라고 좋아할 지 기대 가득한 눈으로 보신다. 어떠냐고, 
솔직히 말해도 되나요? 저는 원본이 좋습니다. 
사장님은 그때부터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어떤 느낌일지 알겠다며 원본과, 전신성형본을 함께 주셨다. 
 
인화지를 틀에 넣어,여백을  잘라낼 때는 옛 사진의 정취가 남아있다. 
 
포토샵한 사진은 전혀 나같지 않았다. 
더더욱 이쁜 줄도 모르겠다. 
 
사실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주관적인가, 
 
김중만의 인물 사진을 보면, 피사체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본질을 꿰뚫어 개성을 드러내는가 알 수 있다. 
 김중만은 여러 얼굴로 한국 남자가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하며 섹시하고, 아름다운지  보여줬다. 
분명 그런 분들이 있을텐데, 동네 사진관에서도, 
 
아름다움이란 것이 얼마나 주관적이면서도 복잡다단한가, 
 
내가 아는 아름다움만 해도, 지성, 백치, 순수, 세련, 순박, 우아, 자연스러움, 단정,...... 한도 끝도 없다. 
 
중년 들어 증명 사진을 찍어보니, 자기 소개서를 쓰는 일이요, 중간 정산서를 받아보는 느낌이다. 
 
줄 서서 먹는다는 유명 맛집에서도,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답게 사진을 찍기로 유명한 사진관에서도, 
나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어쩐지, 모든 맛은 달고 짠 맛으로
어쩐지 모든 미를 하나로 퉁쳐버린 것 같아서다. 
 
7-80%의 사람들이 맛과 멋을 규격화해서, 인정한  틀로 들어갈 마음이 전혀없다.  
증명 사진을 찍으면서 그러니까, 나를 증명한 셈이다. 
 
이제는 노추가 얼굴에 다 드러나는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구나, 
남들처럼 포토샵을 할 수 없는 사람이란 게 가감없이 찍혔다. 

'거리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란의 발  (0) 2024.02.22
워낭소리  (0) 2024.02.20
등잔 밑을 밝히는  (0) 2024.02.14
리치몬드에서 아침을  (0) 2024.02.13
homeless VS houseless  (0) 2024.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