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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west side story-서울 대학교 편

큰 조카가 중 3이 되면서, 대학 탐방하려 서울에 왔다. 

녀석이 크면 방학마다, 서울에 오기를, 궁궐과, 예술의 전당, 한강과, 남산, 공연과 전시회를 데려갈 수 있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꿈은 이루어진다. 

 

새벽 5시 일어나, SRT를 타고 수서역에 9시 29분에 도착했다.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처럼 들어온다. 

인사를 하고, 서울 대학으로 간다. 

 

서울대 3대 바보 뭐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서울대 입구역에 내려, 5513버스를 탄다. 

 관악산은 등산하기 좋아서, 토요일이고 하니, 등산객들이 많다. 

관악 고개를 넘어 서울대 입구  기념탑을 지나, 공학관으로 간다.  버드나무골있던 데다, 

서울대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들과 서울대 출신의 사람들이 기억난다. 그런데 그게 벌써, 33년 전이다.

결혼후 임신하고서 순산을 위해 매일 낙성대에서, 서울대 기숙사까지 오르던 시절도 있었다. 그게 벌써 23년 전이다. 

 

그 사이 서울 대학은 많이 늙었다. 뼈대는 그대로인데, 삭았다. 특히 인문대, 자연대, 사범대 등은, 노골적이었다. 

이래서, 유학가는구나 싶을 정도로, 예전의 서릿발같은 기상이 사라져버렸다. 

겨울이라, 나목이라, 그 노추를 초록이 충분히 가려주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월요일이 졸업식이라 그런지 교내에는 졸업 사진을 미리 찍으려는 졸업생과 가족으로 붐볐다. 

무언가 매듭을 지은 사람들의 강단과 긍지, 가족들의 자랑스러움이 넘쳐났다. 

 

소위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도, 그저 그렇게 사는 사람이어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어서일까, 

내내 마음이 아프고 불편했다. 

 

수험 생활을 견디고 이기는  훈련이 기초 체력이 되고, 

명문 학교 졸업장이 가능성을 넓혀주며, 

사회에 나가서도, 자긍심과 인력이 되어주리라 믿으며 , 전하는 게 나의 사명이었다. 

그러나, 내게 그럴 자격이 있던가, 뼈아픈 반성을 했다. 실제로도 뼈가 아팠다. 

무릎과 고관절에 무리가 와서, 걷기가 어려웠으니까, 

이제 난 못 걸을 수도 있다. 달리기는 물론, 

그런 몸으로 뼈아픈 반성을 하며 서울대를 다녔다. 

 

 

아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발이 빠지도록 많이 쌓인 눈, 

그렇지, 부산은 눈을 볼 기회가 거의 없는데, 어제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대설 주의보가 내릴 정도였으니까, 은세계였으니까, 

겨울이 가기 싫어서 그렇다며 

마치 동남 아시아에서 서울에 관광온 사람들처럼 신기해하고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

 

제 2공학관부터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비탈길에서 스노우 앤젤 하다가 핸드폰을 빠뜨려 망가뜨리기도 하고, 

등을 대고 눕는 것만으로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서울대 교내 서점에서 받은 충격은 더하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는 한국어 교재가 놓여있었다. 그 다음 손바닥만한 크기로, 이상 시선, 김유정 전집, 체홉 단편 등이 출판되었다.  소설은, 30년전 유행하던,   옛날 책들만 잔뜩 쌓여있었다. 광화문 교보보다도 훨씬 작았다. 우리 나라 으뜸가는 대학의 교내 서점일진대... 철학이나, 원서 들은 눈에 띄지도 않았다. 

33년전 난 녹두거리에서 주점 태백 산맥, 까페 창고, 삼영 식당, 이회찬 의원 광장 서적에 자주 갔다 .고시촌 근처에는 중고 책방도 즐비했다. 녹두 거리에는 철학책, 금서, 거대 담론, 고시책들이 넘쳐났다. 33년 후니까,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직원에게 부탁해서, 밧데리를 충전한다.

그는 한데 챙겨둔  전선을 꺼내 꼬인 줄을 풀어 내게 빌려준다. 젊은이들의 친절은 늘 날 울컥하게 한다. 

서둘러 오느라, 콘센트를 까먹고 온 내 정신 머리여, ㅠㅠ,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려면 어림도 없다. 

 

자연대학을 지나 학생 회관으로 들어가니, 드디어 기념품샵, 그곳에서 옷, 필기도구나, 키링 고르고 또 고른다. 

서울대 학생 식당에서 꼭 밥을 먹이고 싶었는데, 다 문을 닫았다. 기숙사로 가면 판다지만, 너무 멀다. 

학생회관을 나와 관정 도서관 앞의 편의점에서, 음료수와 간식을 사먹고 아이들은 또 눈싸움에 열을 올린다. 눈을 뭉쳐서 서로에게 던지고, 

중앙 도서관 옆에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생겼더랬다. 그 계단 아래, 시스트나 성당 벽화를  모사한 그림이 벽면에 걸려있다. 

그런데 동시 상영 극장의 영화 간판 처럼 조잡하기 짝이 없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철학자들 속에서 화가의 얼굴도 보였다. 다빈치, 미켈란 젤로, 라파엘의 얼굴을 찾아봤다. 

 

계단에 앉아 농담하며 지나가는 학생들을 구경하던 중앙 도서관 통로를 태영이와 유진이가 눈싸움 하며 지나간다. 

2024년이지만, 1900년대 인문대 사범대 건물을 지나 본부와 문화관 앞에 이른다. 넓은 공터에 눈이 쌓이고 눈사람이 서있다. 

커다란 곰돌이가, 학사모를 쓰고 앉아있다. 

푸바오가 인기 많다더니, 나중에 다녀온 연대랑, 고대도, 심지어, 신라 호텔도, 다 곰돌이 판이다. 역시 우리는 웅녀의 후손이라서인가? 

법대로 바뀐 문화관에서는 영화도 많이 봤는데, 그 앞에서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든다. 눈을 굴려서, 누런 잔디가 뒤섞인 눈사람 몸통을 만들고, 얼마나 신날까, 

곧 눈사람 머리를 만드는데, 여기서 시련이 닥친다. 

 

역시 인생은 쉽지 않다. 

맨손으로 눈을 뭉치고 굴려서 만들었다. 그걸 몸통위에 올려야 하는데 왜 어째서, 번번히 미끄러지고, 깨지며 굴러 떨어지는가, 

결국 손으로 퍽 쳐서, 쪼개고 그걸 몸통에 붙여 가며 얼굴을 만든다. 

이럴 줄 알았다면, 당근이며 숯, 가발을 들고 오는건데 말이야. 제대로 된 눈사람을 만들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아쉬운 대로, 대가리에는 물병을 

입은 안경집을 쑤셔 넣는다. 

 

눈사람을 뒤로 하고, 부산에서 상륙한 컴포즈 커피에 들른다. 눈싸움 뒤에는 역시 핫초코가 정석 아니겠는가, 

여기서도, 밧데리 동냥은 계속된다, 쭈우우우욱~

규장각이 보이는 사과대 건물이다. 

규장각을 지날 때, 태영이가 정조 대왕이 지은 건물이냐고, 물었다. 

 

정조 대왕의 수원 화성을 다녀온 아이라, 그렇겠지. 근데 그 시절에 신림동은 한양도 아닌데, 그렇게 귀한 문서를 이리 외진 곳에 보관할 리 없다고 말했다. ㅎㅎ 

이름이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한다. 

 

서울대 왔으니 ㅅㄱㄷ기념탑에서 사진을 찍어야지. 졸업식 앞두고 사진 찍으려는 사람으로 북새통이다. 그 틈을 타서, ㅎㅎ인증샷 올리고, 

다시 서울대 입구역, 샤로수길 앞에서도 다시, 사진 한장 더, 

 

서울대 입구역에서는 10분 넘게 , 무슨 일인가 걱정될 정도로 전철이 오지 않았다.

15분 후 미어터질 듯한 열차를 도저히 탈 수가 없다. 

결국 한대를 보내고 그 다음 전철을 타야했다.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수 밖에 없을 때도 있다.

기다리고도 그냥 보내고 또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속절없이 기다리면 반드시 온다는 믿음으로 버텨야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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