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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4년마다 한번 2월 29일에

망원동에서 연지를 만났다.
창덕궁 앞 데비스 키친에 데려가려고 갖은 애를 써   겨우 예약했건만 연지는 탁주를 마시고 싶단다.
1시간 이나 늦게 우여곡절 끝 5시에 망원역 도착하니 근처 까페서 "아몬드"를 읽고 있다. 연지는, 
연지가 마시던 커피를 들고, 망원시장 "복덕방" 갔더니, 6시 들어오란다. 5시 20분, 
그 추위에 연지와 어슬렁 대며 기다린다. 
 
근 10일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 약속이 있었다. 
한달에 한번 외출할까 말까 한 내게 힘든 일이다. 
체력도,  마음도 모두 딸린다. 일상은 엉망이 된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함께 무언가를 먹고, 이야기 나누는 일이 늘 어색하고 어렵다. 
약속 장소로 가면서, 늘 후회한다.
어쩌자고 내가 만나자 했을까,
지금이라도 도망가버릴까,
사고라도 나면 좋겠다. 이제 어쩌지.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그래도 4년만에 한번이니까, 2월 29일이니까, 연지니까, 나간다. ㅎㅎ
 
추워서 결국, 더운 물까지 얻어 마시고 기다린다.
일본인으로 보이는 두 남자도 우리와 함께 기다린다. 
새파란, 2-30대가 아니다. 
정각 6시에 문을 열고 , 맛 없기만 해봐라, 
멸치 볶음이 나오고, 그저 그렇다.
"인생 육회"가 나온다. 나는 생고기는 생달걀은 거의 먹지 않는다.  육회를 거의 먹어본 적이 없다. 그저 그렇다.
"도토리 묵무침"이 나온다. 도토리 묵은 직접 쑨 것 같았고, 야채에 아주 많은 참기름을 뿌린 것 같았다. 그저 그랬다. 
신촌의 양조장에서 만들었다는 탁주를 시켜서 와인잔에 담아 먹는데. 달지 않아 좋았다. 사카린 맛 나지 않아서 좋았다. 
와인 같았다. 그런데 많이 비쌌다. 
 

일본인인 줄 알았던 두 남자는 내 나이 또래 같았고 한명은 일본인, 다른 한사람은 일본어가 능숙한 한국인이었다. 
외국어를 잘하는 남자는 언제봐도 섹시하다.
현우는 일본 글자를 하나도 모르나, 일본어를 아주 잘 구사한다는데, ㅋㅋㅋㅋㅋ저 사람은 일본 글자도 잘 알겠지. 
국적이 다른 중년 남자 둘이서 맥주도, 와인도, 양주도 , 소주도 아닌, 탁주를 마신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도, 50대와 30대 여자 둘이서, 끊임없이 웃고 이야기 나누는 게 신기했을까, 
그들을 사진 찍었고, 돌아올 때는 인사도 나눴다.
 
4년에 한번이니까, 2월 29일이니까, 연지랑 만났으니까, 
이렇게 얼굴이 두꺼워지는 내가 마음에 든다. ㅎㅎ
 
8시 필라테스 수업이 있어서, 결국 중간에 일어섰다. 연지와 망원동에서 마포구청까지 걸어왔다. 
그때는 내가 이성적이고, 차갑고 외향적인 줄 알았단다. 이렇게 약하고 여리고 감정적인 사람인 줄 정말 몰랐단다. 
 
나는 그때 많이 불안하고 두려웠다고 
그랬다는 것조차 몰랐다고 했다.
늘 이걸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했다. 
 
나의 제자들은 정확히 15년 후 자신들이 하던 말대로 되었다. 
연극 배우, 이대 부고 정교사, 수의사,....
 
탁주를 마시고, 8시 필라테스 수업에 반이나 지나서, 들어갔다.
4년만에 한번이니까, 2월 29일이니까, 연지와 만났으니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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