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를 나타내는 순 우리말이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다운가,
높새 바람, 여우비, 마른 장마, 함박눈, 꽃샘 추위...
한 며칠 반팔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볼 정도로 따뜻했던 날씨가 3월되더니 또 추위가 기승이다.
오늘은 아예 먼지 바람이 강하게 불어대, 길고 두터운 옷으로 무장한 행인들을 날려버릴 듯하다.
이런 추위에도 사실 봄은 이미 완연하다. 나무들은 이미 꽃을 피워낼 태세다. 소름처럼 이미 꽃망울이 돋아있다.
나 역시 목을 감싸는 롱코트 안에 원피스를 입었다. 반투명 꽃 자수 레깅스를 신었다. 양말없이 맨발로, 흰 운동화를 신고 시장에 간다.
봄을 앞두고 닥친 이런 추위를 기억한다.
내 꽃이 막 피려는 차, 추위가 닥쳤고, 나는 황망했다.
91년 3월에 눈이 무릎까지 쌓이고, 비까지 내려 길은 추적추적 진흙탕이었다.
섣불리 난, 어떤 불길한 징조라 여겼고 지속되리라 믿었다
추웠다.
두려웠다.
불안했다.
그 추위에는 전류가 흘렀다. 나는 꽃샘 추위에 감전된 채 20대를 보냈다.
마침내 봄이 와, 땅이 녹으면서 부풀어올라 꽃을 피워내면서, 사방에 꽃내음 흩뿌린다해도, 마침내 때를 다하고, 꽃잎이 난분분한다해도, 달밤을 등지고, 땅 위로 후두둑 뛰어내린다 해도,
나는 여전히 지릿지릿 전기가 통해 움찔움찔 발작질하며 화들짝 피해간다.
다만 그 자리서 온 몸이 뻣뻣해진 채 그대로 확 쓰러져버리진 않는다. 대신
아주 잠깐 멈춰선다.
#꽃샘추위#망원시장#이대 교정#김활란동상#인천공항#이대앞스타벅스#91학번#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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