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났다.
꽃은 지니 녹양방초가 싱그럽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오려 대청소를 했다.
서재를 정리하다,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많아서 놀랐다 .
나는 그의 소설보다는 산문을 좋아한다.
특히 달리기, 외국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아주 인상깊게 봤다.
꽤 괜찮은 여행기도 많았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많은 하루키 산문집을 가지고 있는 줄이야...
학생들 중간 기말 시험 후, 시내 서점에 들러 한권씩 샀구나,
한 시간 가량 그의 산문을 읽으며 마음과 머리을 달랬구나 싶다.
5, 7, 10, 12월 마다, 난 광화문 교보에 홀로 들러, 난, 서가에서 위스키 한잔 마시고 온 셈이다.
무려 20년 넘게,
일을 줄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나와 마주보게 되었다.
밤마다,백포도주를 한잔씩 마신다.
성탄절 선물로 받은 흑맥주를 백주에 홀로 마시기도 했다.
위스키를 마셔본 적은 한번도 없다.
아주 비싸고 독한 술,
선물을 지나 뇌물용,
뺀질뺀질
불붙일 정도의 화력
세상살이에 닳디 닳은 남자들이 어두침침한 데서, 허세부리며 마시는 술인 줄 알고 관심조차 없었다.
하루키의 산문은 교보문고 광화문 점에서 대낮에 홀로 마신 딱 한잔이었다.
갯 바람불고, 춥고, 파도 일렁대는 광화문에서,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위스키"란 테마로 스콧틀랜드와 아일랜드를 다녀온 여행기이다.
스콧틀랜드 여행객들은 외지고도 날씨가 고약한 아이레를 찾아 작은 별장을 몇 주 빌려 책을 읽는단다. 난로에 향 좋은 이탄을 지피고, 음악을 들으면서, 위스키를 마신단다. 전화선도 다빼고, 어두운 창 밖의 바람과 파도 , 비 소리를 들으면서,
보리, 맛있는 물, 그리고 니탄으로 싱글 몰트를 만들어낸, 아일래이 섬
갯바람은 이탄 속에 흠뻑 배이고 땅 속 물도 이탄만의 독특한 냄새가 스민단다. , 갯바람이 섬의 목초로 불어 들어 그것을 먹고 자란 소나 양에게서도 자연의 풍부한 염분이 배어든다.
해변의 창고 속, 술통은 우기동안 갯바람을 담뿍 머금었다가 건기에 술통 속 위스키에서 흠뻑 빨아들이며 아일레이의 독특하고 자연스런 향이 난다. 그 향이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한다.
위스키를 만드는 일은 본질적으로 낭만적이란다. 지금 내가 만드는 술이 언제 나올지 모르고, 오래전 세상을 떠난 양조쟁이가, 한밤에도 술맛을 보러 다니는 발자욱 소리가 들린단다.
아일래이 섬에서는 굴에 싱글 몰트를 부어 먹는단다.
엄혹했던 시절, 묘지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몸을 덥히려고 위스키를 마신 후, 술잔을 바위에 던져 깨버렸다, 위스키병도 깨버렸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위스키로 축배를 들고, 누군가 죽으면 아무말 없이 위스키 잔을 비웠다고 한다.
위스키에는 난롯불 앞에서 정겨운 옛편지를 읽을 때처럼 고요함과 따사로움, 정겨움이 배어 있다..
각 양조장은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고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려는 경박한 알람거림이 없다. 헤밍웨이의 초기작처럼 예리하고 절제된 문체같다. 화려한 문체도 아니고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진실의 한 측면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다. 누구의 흉내도 내지 않는다. 술을 만든 사람의 얼굴이 또렷이 드러난다. 섬사람들의 개성과 생활 양식이 이 맛을 만들어낸다.
레서피란 삶의 방식이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가치 기준이다. 무언가를 버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없을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증류를 해서 더해지는 것도 있고 덜해지는 것도 있다.다만 개성의 차이일 뿐 모두 오랜 세월이다. 그러나 기다릴 만한 가치는 있다.
아일랜드의 아름다움은 감동이나 경탄이 아니라기 위안과 진정이다. 말투나 걸음걸이 가 느려지고,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경험하기 힘든 멋진 나날이었음을 사무치게 느낀다.
그곳에서는 수돗물과 위스키를 반씩 섞어 먹는다.
아일랜드 펍은 가게마다 흑맥주 맛이 다르다. 맥주 보관 온도가 다르고 따르는 법이 다르고, 술잔이 다르고, 거품 모양이 다른다. 그런 차이가 집적되어 결국 똑같은 맛을 가진 맥주는 하나도 없다.
한 펍에서, 후줄근한 정장을 입고 들어와, 위스키를 마시는 한 남자를 관찰한다. 그 순간 완전히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몸도 마음도 이토록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사람을 만날 기회란 흔치 않을 것이다.그 정도로 그는 느긋했다.
술이란 어떤 술이든 산지에서 마셔야 가장 제 맛이 나는 것 같다. 그 술이 만들어진 장소에 가까울수록 좋다. 좋은 술은 여행하지 않는 법이란다.
수송이나 기후 변화로 맛이 변할 수도 있다. 그 술을 일상적으로 마시는 환경을 잃으면 그 향이 미묘하게 심리적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바다에서 부는 거센 바람이 파릇파릇한 풀섭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언덕을 뛰어오르고, . 난로엔 이탄이 부드러운 오렌지 빛을 내며 탄다. 그 한잔을 언어로, 어찌 다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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