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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버리고 돌아와 나는 울었다.

최영미 시인의 새로운 시집이다. 

"아름다움을 버리고 돌아와 나는 울었다"

시집의 표지는 구스타브 꾸르베의  "트루빌의 검은 바위들"이다. 

최영미 시인의 얼굴이 나온다.

그녀의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사진은 담을 수가 없다. 

나는 그녀를 몇 번이나 만나고 봐서 안다. 

그녀의 시와 글은 30년 넘게 봐왔다. 

 

목차를 지나, 첫 시를 읽었다. 

푹 하고 웃었다.

너무나 그녀답게 웃겼다.

 거리에 서서 시를 사진찍어 하영에게 보냈다. 

그녀도 보자마자 웃었다고 한다. 

 

웃기는 시라니. ㅎㅎ

 

 

팜므 파탈의 회고

 

내가 칼을

다 뽑지도 않았는데

그는 쓰러졌다. 

그 스스로 무너진 거다. 

 

Revenge is a dish

unlike pizza

best served in cold

 

<<World Soccer>>잡지에서 오려낸

이탈리아 속담을 오래도록 물고 다녔다.

단맛이 없어질 때까지

 

FC바르셀로나가 리그 하위 팀에 패한 뒤

감독이 경질되었고 

 

나는 뜨거운 사막을 걸었다.

모래에 파묻힌

칼날이 반짝였다

나를 노리고 있었다

 

오아시스 호텔에서 수영을 즐기고 

수박 주스를 마시고

지루한 소문이 귀걸이처럼 달린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나갔다. 

 

 

 

마지막 시도 기억해야지.

 

서울의 울란바토르

 

어떤 신도

모시지 않았다.

어떤 인간도 

섬기지 않았다.

 

하늘에서 떨어진 새처럼 

나 홀로 집을 짓고 허무는 데 능숙한 

 

나는 유목민

농경 사회에서 사느라 고생 좀 했지

 

짝이 맞는 옷장을 사지 않고

반듯한 책상도 없이

에어컨도 김치냉장고도 없이

차도 없이 살았다 그냥

 

여기는 대한민국

 

그가 들어가는 시멘트 벽의 크기로 

그가 굴리는 바퀴의 이름으로 평가받는 나라

 

정착해야, 소유하고 축적하고

머물러야, 사랑하고 인정받는데

 

누구 밑에 들어가지 않고

누구 위에 올라타지도 않고

혼자 사느라 고생 좀 했지

 

내가 네 집으로 들어갈까

나의 누추한 천막으로 네가 올래?

 

나를 접으면 아주 가벼워질 거야

 

 

최영미 시인은 170센티 넘는 키에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녀는 어딜가도 눈에 띄였고, 늘 돋보였다. 

지성은 날카로웠고 재능은 넘쳤다. 

 

그녀를 통해 처음으로  내가 나무 옹이처럼 , 나무 결처럼 뒤틀린 글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름다워서 어울릴 수 없고 겉도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어쩌면 운이 그 무엇보다 앞설 수 있다는 것을 

 

 

 

 

PS

병원까지 걷기도,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도 애매해  고민 중인 아이에게 친구들이 그냥 부모님께 차 한대 사달라고 하라 조언했단다. 

현우가, " 본가도 차가 없어" 했더니, 분위기가 파~~~~~악 가라앉았단다. 

아마, 마음 속으로들, '어찌 이런 집이', '차도 없다니', '대체 저 집은 어느 정도길래' 

마구 웃으며 '원래 차 있었는데 폐차하시고, 굳이 차를 탈 필요를 못느껴서 않사셨어"라고 설명했더니, 비로소, 친구들 표정이 풀렸단다. 

 

그럼 나도 서울의 울란바토르인가,

말을 타고 다니는, ㅎㅎ

아니구나,

동화 "수호의 하얀 말"처럼, 

사랑하는 말이 죽은 후, 악기, 마두금을 만들어 연주하는 사람이던가, ㅎ

 

나의 첫 차이자 마지막 차, 라세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