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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mphlet

돈키호테

발레 돈키호테를 봤다. 

세르반테스가 썼다는  돈키호테, 산초, 로시난테가 나오는 소설은 당연히 본 적이 없다. 

무수히 들었다. 풍차를 향해 돌격했다는 둥, 이상주의의 전형이라는 둥, 

소문만 무성할 뿐 직접 본 적도, 실제 만난 적도 없는 것들이 어디 소설 "돈키호테 "뿐이랴. 

 

발레 "돈키호테"는 의상, 음악, 안무, 한국 발레리나의 기량 등등 세계 최고 최선이래서 보러갔다. 

절대로 기대하면 안된다. 기대가 크면 기쁨과 만족은 그만큼 멀어진다. 그렇게 다짐하며 갔다. 

과연 듣던 그대로, 대단했지만 공연 내내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앞에서, 스무번째 줄이라 무용수의 표정, 땀과 숨도 가깝고, 왼쪽에는 홀로 발레 공연 보러 온 30대 초반의 아리따운 아가씨, 오른쪽에는 8살쯤 되어보이는 사내 아이와 함께 온 교육열 넘치는 40대 초반 여인과 함께 였는데. 

휴식 시간에는 무려 강수진 단장을 직접 만나 인사하는 기회도 얻었는데. 왜 그랬을까, 

 

 

 

부러 늘렸나 싶게  길고 가는 팔, 내장이 다 들어갈까 싶게 얇은 몸통, 아주 미세한 움직임도 새겨지는 등, 깃털처럼 길고 가벼운 다리.  다른 세계의 존재들이 인간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도약, 점프, 회전 등 몸이 내는 모든 소리를 다 지워버린다. 음악에 맞춰 깃털처럼, 먼지처럼, 중력을 넘어서 가볍게 더욱 높게 더더욱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춘다. 

그것이 날 불편하게 했다. 문득 발레는 매우 가학적이며 기이하고도 변태스러운 취미구나 싶어서 내내 불편했다. 

 

프랑스 궁정의 귀족이라 상상하면서 보아도,

돈과 시간이 많아 즐길 수 있는 호사니 감사해야지 하면서도, 

내가 지금 뭐하는 것일까, 무대 위의 저들과 대체 어떤 관계일까 싶었다. 

나는 전혀 위로를 받지 못했다. 

대신 나의 삶과 우리 모두의 인생, 그  고통과 슬픔과 너무 동떨어진 세상을 구경하다보니, 낯설고, 죄책감과 조바심이 들었다. 어서 나의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돈키호테를 추는 무용수들은 어떤 마음일까, 그들은 정녕 깊은 만족감과 기쁨을 누릴까,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서 하늘을 나는 춤을 추면서, 그들은 행복할까, 그렇다면 됐다.  발레에 모든 것을 다 바쳐 불태운 그들이 만족하다면 그걸로 됐다. 

 

 

인간이 되지 않으려 평생 노력해온 사람들을 무대 위에서 보았다.

이상하게 초조했으며 죄의식이 들었고, 어서 빨리 나는 인간계로 돌아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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