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께서 올해 첫 수확한 무화과를 보내셨다. 느지막히 무화과 먹고, 땡볕에 나섰다.
집 근처에 상영관이 없어서, 다른 동네 메가 박스 까지 가서 본다.
평일 낮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있다.
올해 최고의 영화라는 평이 많다.
음악 음향 등등 과연 그렇다.
유럽인들의 문화적 풍요로움과 세련됨을 실감하고 왔다.
큰 소리를 내지 않고도 호되게 비판하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그렇게 끔찍하게 들려주다니.
루돌프 회스 가족이 폴란드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 지역, 아름다운 집에서 흰 옷을 입고 지낸다.
집은 쾌적하기 이를데 없다. 커튼, 카펫, 가구, 집기 그 모든 것들이 단정하며 아름답다. 먼지하나 없이 각 맞춰 깨끗하다. 풀장까지 있는 마당에는 꽃과 식물, 빨래줄이 평화롭기만 하다. 그 담 너머 하늘에는 구름이 떠다닌다. 노을이 진다. 새가 날아다닌다. 그러다가, 연기가 피어오른다.
집 근처 강에서 가족들은 무시로, 배를 저으며 망중한이다.
낙원이다.
맑고 잔잔한 강물이 흐른다.
잿더미와, 부유물이 떠내려온다.
나는 중간에 졸았다.
영화관 오면서 핸드폰을 두고 왔다.
시간을 볼 수 없어서 답답했다.
어디선가 연락이 올까봐(하루종일 중요한 연락은 하나 올까말까인데도 ㅎ) 조마조마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걸어왔더니. 졸렸다.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했다는 "알렉산드라"일화가 나온다. 수용소를 탈출하는 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사과를 군데군데 숨겨 두었단다.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와 겹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던 나치시절에 음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히틀러 치하 성실했던 한 군인이 아무 생각없이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보여준다.
자본주의, 그야말로, zone of interest에 사는 내게 정신 차리라고 말한다.
"책을 읽어주는 남자"와 "뮤직 박스"가 떠올랐다. "쉰들러의 리스트"는 그다지.
"책 읽어주는 남자"는 영화로도, 책으로도 여러 번 봤는데, 문맹의 의미. 윤리적 방향성없는 성실이 어떤 결과를 낳는가, 사랑과 자존심간의 균형 등에 대해 말했다. 케이트 윈슬렛을 통해 서양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봤다.
"뮤직 박스"는 거의 40년 전 작품이다.
아주 옛날 주말 극장 같은데서 지나가며 본 영화인데, 제시카 랭이 참 시원하게 아름다웠더랬다. 성실하고 다정했던 아버지가, 나찌 휘하에서, 유대인에게는 어떤 악마였던가 증언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한강의" 소년이 온다"도 기억났다.
"소년이 온다"도 절대,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 될수 없다고 못박는다. 그러나, 울며 불며, 다 떨어진 옷입고, 내 소매 부여잡고 사정사정했었다.
조나단 글레이저는 온갖 목소리를 다 채집한 후 급속 냉동한 후, 영하의 목소리로 차갑게 더 차갑게 말한다.
Jonathan Glazer가 누구인지 찾아봤더니 역시 영국 출신이네. 미국 사람 같지 않았다.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방식이 얼마나 고전적이고 세련되고 간접적이며 무겁고, 깊이있으며 충격적인지.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다. 새롭지 않고도 얼마든지 새로울 수 있다고, 아주 작은 차이로도 얼마든지 깊이와 넓이, 무게와, 강약을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고,
그가 들려준 소리는 충격적이었다.
돌아가는 기계소리. 화장터 용광로, 장화소리, 총소리, 기차소리, 개 짖는 소리, 사람의 신음 소리, 파리 시위 폭동 소리, 오토바이 엔진의 계속된 회전 소리, 피아노 소리.....
은유는 낯설었고
풀리지 않는 실타래가 곳곳이다.
zone of interest 무슨 뜻일까, 관심의 영역.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우리는 결코 제대로 보지 못한다.
나중에 찾아봤더니,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에워싼 지역을 가르키는 고유명사란다. 사실 내 주소지이기도 하다
담벼락 너머의 아우슈비츠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네가 누리는 삶이 아무리 아름답고 단단하며 안온해 보이더라도,
너는 들리냐 저 소리들이,
너는 보이냐 음화로 번뜩이는 저 꿈과 행동들이
공기와 물과 바람과 볕은 소리가 되어 우리에게 말한다.
깨어나라고
제대로 보라고,
움직이라고,
#존오브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Jonathan Glazer#존글레이즈#아우슈비츠수용소#열화상카메라#알렉산드라#루돌프회즈#히틀러#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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