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생을 등산에 비유합니다.
저는 대입이나, 문해력을 등산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예컨대 중앙대학에 가고 싶다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럼 저는 대뜸 산을 올라 본 적 있냐고 묻습니다.
한라산, 설악산, 지리산을 오른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 북한산 쪽두리 봉도 가본 적이 없다지요, 아니 동네 뒷산도 못가본 사람이 수두룩 합니다.
그럼 한번 가보라고 권합니다.
어쩌면 산을 오르는 일 자체는 하나도 어렵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북한산 쪽두리봉만 하더라도, 오르려면 오랜 준비가 필요합니다.
일단 집에서 북한산 아래까지 찾아가야 합니다.
하루 날 잡아, 아침에 일어나 집을 나서기까지가 가장 어렵습니다.
물론 부모님이 차로 데려다주시겠지요? 그대신 혼자 가보기를 권합니다.
전철을 타고 입구에 내려서도 한참 올라가야 비로소 북한산 국립 공원이 나옵니다.
아니 그 전에 등산복도 준비해야 하고요
적어도 등산화는 꼭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산을 오를 건강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 우선 산을 오를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일기도 허락해줘야 하고요,
등반 도중에 아무런 사고도 없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언덕만큼 낮은 동산도, 오르려면 시간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실상 독바위역에 내려서, 족두리봉까지 올라가는데에는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에서, 독바위역까지, 독바위역에서 북한산 입구까지, 혹은 족두리봉꼭대기로부터 돌아오는 길이 더 멀고 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실제 산을 오르는 시간보다 그 전에 준비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중앙대를 가고 싶다는 학생에게 말했습니다.
중앙대가 어디있는지 아냐고, 중앙대를 가본 적 있냐고, 9호선 흑석역에 내려서도 한참 걸어가야 한다고,
집에서 흑석역까지 가는데도 만만찮게 준비를 해야 한다고,
아니, 중앙대를 가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요.
정말로 중앙대를 갈 마음과 의지가 시간으로 쌓여야 한다고요.
참으로 등산과 비슷하지요.
작년 여백 서원에 다녀왔습니다.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를 정년 퇴임하신후 여주에 괴테 마을을 지으신 독문학자 전영애 선생님의 서재였습니다.
아버지의 호, 여백을 따서, 지은 서재라고 했습니다.
아버님의 팔순에 킬리만자로를 오르신 분이라했습니다.
과연 그런 호연지기를 지닌 분의 딸 답다 싶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한학자이셨던 아버지는 팔순에 킬리만자로를 오르셨다고 합니다.
그 말을 되새겨 보면 일단, 80에도 험령을 등정할 체력이 가지셨고,
아프리카까지 비행기를 타고 갈 경제적 여유가 있으셨으며
날씨 및 여러 사정이 허락한 운도 좋은 분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이 문해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백 서원이 아버지의 호를 따왔다면,
팔순에 킬리만자로를 오른 분이라면,
어떤 분일지 상상해보고 짐작해보는 것,
이렇듯 한 자, 한 단어에서도 넓고 깊게, 촘촘하게 생각의 그물을 펼쳐나갈 수 있는 힘을 문해력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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