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거리에서

2025-을씨년스럽다vsWTF

 

2025년은 60 갑자 중 42번째인 을사(乙巳)년이다.

쓸쓸하고 스산한 분위기나 매우 가난하단 뜻의 "을씨년 스럽다"는 표현은 역사속 을사년들로부터 유래했다.

 

지난 을사년엔 조선 4대 사화(士禍) 중 마지막인 1545년 을사 사화가 있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외척 윤씨들 간 내분이 대윤·소윤 갈등으로 번져 대윤 일파가 숙청된 사건이다.

한데, 이순신 장군의 탄생년도이기도 하다.

덕분에 일본도 을씨년스러웠더랬다. ㅎㅎ

일각에선 큰 흉년이 들어 전국적 구휼을 시행했던 1785년 을사년을 을씨년스럽다는 말의 시초로 본다.

하나, 가장 유력하기론, 일본이 대한제국을 ‘보호’하겠다며 외교권을 강제 박탈, 사실상 식민지로 만든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이다. 그 시대 흉흉한 민심을 가리키며 ‘우리나라는 을사년마다 고초를 겪었다’란 말이 널리 퍼졌다.

 

다음 을사년인 1965년 6월 22일엔 한일청구권협정이 이뤄졌다. 이는 일본의 식민 지배와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 측 모든 배상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3억달러의 보상금과 2억달러의 차관을 받고 국교를 정상화한 협정이다. 한일 회담이 시작된 1964년부터 대학생 중심의 반대 시위가 일자 박정희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기도 했다.

 

작년 말에도 게엄령이 선포되어 탄핵 정국이 시작된데다, 무안에서 큰 사고도 이어졌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2025년은 푸른 뱀의 해이자, 을사년이다.

 

한데 미국의 MZ세대 역시 올해가 을씨년스럽다고 야단이란다. 올해가 소위 ‘WTF(What The F***·빌어먹을)의 해’라면서 ‘2025년은 망했어 (meme·)’이 유행하고 있다. ‘WTF 연도’는 1월 1일이 수요일로 시작해 첫 사흘이 수(Wed)·목(Thu)·금(Fri)으로 이어지는 해로, 각 요일의 첫글짜를 따서 지어졌다.

 

WTF 년도가 "을씨년스럽다"고 믿게 된 건 코로나 팬데믹 원년 2020년이 수요일로 시작했기 때문이란다. 당시 MZ들은 입학·졸업식을 못 치르고 취업과 결혼이 막히는 등 일생일대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올해가 코로나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WTF 연도란다.

 

그러다 보니 역사 속 ‘저주받은 WTF의 해’가 줄소환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고 테러 집단 ISIS가 부상한 2014년,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2003년,

아시아 외환 위기가 덮친 1997년,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한 1986년이 모두 수요일로 시작한 WTF였다. 해외 MZ판 무속인 셈이다.

 

반면 새해를 맞은 네티즌 사이에선 WTF의 우울에서 벗어나자며 이를 ‘What The Fantastic year!’ ‘Wonderful Things For sure’ ‘What The Fun’처럼 긍정적인 WTF로 바꾸자는 챌린지도 이어지고 있다.

 

수학계에선 올해가 ‘제곱수 연도(perfect square year)’라 반기고 있다. 제곱수는 어떤 자연수를 두 번 곱해 나오는 수로, 2025는 45에 45를 곱한 결과다. 이전의 제곱수 연도는 44²=1936년으로 89년 전이고, 다음 46² 연도는 2116년으로 91년 뒤다.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연도인 셈이다.

제곱수나 거듭제곱은 수학의 아름다움과 규칙성, 우주의 방대함과 무한대까지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 매력 때문에 미국은 비공식적나마 ‘제곱근의 날(square root day)’을 기념한다. 이는 어떤 날짜의 월과 일을 곱해 해당 연도의 마지막 두 자릿수가 되는 날이다.

예컨데 2009년 3월 3일, 2016년 4월 4일, 2025년 5월 5일, 2036년 6월 6일 등이다.. 이날 미국 학교에선 제곱근 개념을 재미있게 가르치고, 당근·감자 같은 뿌리(root) 식물을 정사각형(square)으로 잘라 먹기도 한다.

 

한편 과학계에선 태양의 활동의 극대화로 그 여파가 나타나리라 추측한다. 태양은 약 11년 주기로 흑점 극대기와 극소기를 오가는데, 작년부터 늘어난 흑점 수가 올해 정점에 달해 20여년 만에 가장 센 태양 극대기가 될 전망이다.

그 결과 태양 폭풍과 자기장 방출이 늘어난다. 이는 지구에 전자·통신·GPS 시스템 장애를 유발하거나, 인간 수명과 생식 능력, 기후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한다.

현재 태양 활동 주기가 영향력이 미미하리란 분석이 지배적이나, 일각에서는 ‘태양 폭발설’ ‘우주 멸망설’까지 거론한다.

 

올해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25년마다 돌아오는 죄 사함의 해, 희년(禧年·jubilee)이기도 하다.

21세기를 연 2000년 이후 첫 희년이다.

고대 히브리 전통에선 이스라엘 백성이 7년간의 안식년을 7번 지내고 49년이 지난 다음의 해, 즉 50년마다 축제를 열었다. 그 기간엔 노예와 죄수가 자유인이 되고, 빚이 탕감되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는 등 하나님의 특별한 자비가 나타난다. 15세기부터 가톨릭교회가 “모든 세대가 최소 한 번은 희년의 은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주기를 25년으로 대폭 줄였다.

희년에는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다섯 청동문 중 맨 오른쪽 ‘성문(聖門)’이 열린다. 이 문을 지나며 영적 갱신과 자비의 축복을 누리려는 전 세계 신자와 관광객이 몰린다. 지난해부터 이탈리아 로마와 바티칸은 수천만 명의 순례자를 맞을 준비로 들썩이고 있다.

 

어쨌거나 으쌰으쌰로 을사년을 잘 보내기를 다짐하고 기원한다.

 

#조선일보#정시행기자#을씨년스럽다#을사년#푸른

 

 

'거리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해에는 흰  (0) 2025.01.04
걷다  (0) 2024.12.23
겨울 날 준비를 하며  (0) 2024.12.13
문해력 3-등산  (1) 2024.11.26
문해력유감2-기빨린다  (0) 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