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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s

견우에게

그는  나를 공중으로 들어올렸다.

 

그렇다. 그는 나를 지상으로 띄워 올렸다.

내 몸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그는 나를 등에 엎거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들어 올렸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구름 위를  산책했다. 

 

그때 우린  "나뭇군과 선녀"라 불렸다. 

내 이름이 "선"이라 그렇게 불렸다. 

이미 불길한  연인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우린 2000년 3월5일에 김활란 박사  동상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대로 그는 왔단다.

그러나, 나는 결혼식 중이었다. 

결혼 전 날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는 한참 기다리다 홀로 차를 마셨다고 했다. 

 

그는 "견우"로 살았다. 

나도 "직녀"가 되었다. 

 

큰 물난리가 나기도 했다. 

때때로 가뭄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14년 지난 후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리고  한번 더 약속한다. 

2020년 7월 10일 7시 인천 공항에서 만나자고, 

이번에는 그가 오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천공항은 텅 비었다. 

은하 철도 999같았다.

1 터미널에도, 2 터미널 마저  그는 없었다. 

나는 홀로 공항 철도를 타고 돌아왔다. 

 

그런 약속을 왜 2번이나 했으며 번갈아 가며 잊고 어겼을까,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그때 우리는 서로를 지상으로부터 들어 올렸다. 

구름 위를 함께 산책하다가, 찬 바람을 맞고서, 물로 바뀌었다. 

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이제 다시 땅으로 후두두두둑 떨어지고 있다. 

무릎이 꺾이고

얼굴이 패이며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으스러질까 두려워하며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한데 뜨거웠다. 

통째로 타들어가며 녹아 올라간다.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다시 나는 하늘로 올라간다. 

 

그의 "고향의 봄"을 싸그리 태워가는 산불 위에 내렸기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노래 소리 들으며 다시 올라간다. 

다시 무릎이 꺾이고 얼굴이 패이고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으스러지게 지상으로 내려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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