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도였고,
베란다에 수세미와 장갑을 가지러 나갔다. 그런데 미닫이문이 닫히더니 열리지 않는다.
작은방쪽 창으로 들어가려고 했더니, 창도 잠겨있다. 무슨 일인가, 며칠전만 해도 열렸는데, 꼼짝없이 갇힌 셈이다.
26동 앞에는 놀이터가 있다.
여기요,
여기요
여기요.
요기요, 라고 하지 않아서인가
아무리 불러도 사람들이 그냥 지나간다.
급기야, 에어컨 실외기 쪽에 매달려 불러도 사람이, 쳐다보기만 할뿐 그냥 지나간다.
아예 듣지도 않는 사람도 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아래층은 암환자가 있어서, 소리에 예민하다더니, 층간 소음으로 2번이나 항의하러 와놓고, 내다보지도 않는다.
저 멀리서 꼬마를 데리고 한 여인이 온다. 무슨 일이에요? 아이를 두고, 내쪽으로 빨리온다.
문이 잠겨서 나갈 수 가 없다고 비밀 번호도 알려주었다. 정말 금방 와서 그녀는 문이 열려있었다며 나를 꺼내 주었다.
너무 감사합니다. 차라도 하시게 연락처라도 알려주세요. 했더니. 늘 아이들 데리고 나다녀서, 집에 자주 없다고, 402호라고 한다.
나도 그 시절 402호에 살았는데
그러니까, 20년전의 내가 날 구해준 것이다. 그때 나는 살집이 두툼했고, 늘 팔과 어깨가 아팠다.
출산 예정일보다, 무려 11일 늦게 나오고, 4.02 키로로 1시간 40분만에 태변 먹고 태어난 아기 , 100일때 9키로를 넘고 돌 때는 이미 20키로를 넘은 초대형 아기 신현우의 엄마였기 때문이다.
뿐 만아니라, 아기는 22개월이 지나도 걸으려고 하질 않았다. 그냥 기어다니거나, 엄마에게 안겨다녔다.
현우는 뭐든 그랬다. 끝까지 버티다가 갑자기 큰 마음 먹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아이였다.
낮잠을 거의 자지 않고, 엄마 젖만 먹고, 아주 순하고 이쁜 아가였다. 엄마를 너무나 사랑하고, 책 읽는 것을 주의깊게 듣고, 음감이 뛰어난 아이였다.
그때 나는 현우랑 딱붙어서,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26개월 지나 처음으로 현우가 중동 어린이집 가던날, 나는 너무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성산 자동차 학원에 등록해서, 운전 면허를 따고 곧바로, 라세티를 뽑아서, 심장 터질 듯, 떨면서, 타고 다녔다.
그때의 나처럼 402호에 사는 30대의 여인이 날 구해준 것이다.
그때 나는 몸이 피곤했고, 불안했으며 행복했고 반짝반짝 빛이 났고, 슬펐고 많이 웃었고, 두려웠으나 행복했다.
맨발에 까무잡잡했고 반짝거렸고, 포동했다. 그리고 긴 검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내 배에서 나온 아기가 날 꺼내주었고, 손을 잡고 인도해주었으며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이쁘다고 고맙다고, 자주 말해줬다.
그때 나는 맨손에 홀로 갇혀있었다. 태양이 환했으나 아무도 없었고,사방이 문이었으나 잠겨있었다. 아니, 문을 내가 열지를 못했다.
세상을 향해, 여기요. 저 좀 도와주세요 라고 소리질러도
지나가는 이, 듣는 이, 관심갖는이, 달려와 주는 이, 문을 열어주는 이가 없었다.
최근에 나는 into the door라는 아이디를 쓰기 시작했다.
이젠 더이상 문밖의 여인이 되고 싶지 않아서다. 창밖의 여자(조용필 오빠 죄송합니다 ㅎㅎ)가 되고 싶지 않다. 이제 그 문으로 들어가고 싶다.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처럼 어렵다는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되뇌었는데,
역시 말하는대로 이루어지나보다.
문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문을 열고, 그녀가, 내가, 내 아이가 들어와 나를 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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