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공원을 걸어가는데 자전거를 타고 오는 한 남자가 나에게 뭐라고 한다.
자전거 전용 길이니 비키라고,
네 알겠습니다.
한밤중이라, 혼자가는 여자에게 혼자 가는 남자가 말을 걸면, 무섭다.
월드컵 공원 지나 가양대교로 들어섰다. 부지런히 가는데 저만치 한 여인이 신호등 앞에 앉아있다.
아예 철푸턱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다. 나시에 빨간 몸빼 같은 것을 입고 앉아있다.
숲이 우거지고, 어둑신해서, 모기가 득시글할텐데,
그 분께 여쭈었다. 뭐 좀 도와드릴까요?
아니에요, 누굴 기다리고 있어요.
가로등 아래 그녀의 얼굴은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도 갗았다.
신호등을 건너서, 가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던, 그 중년 남자가 몸을 훽 돌린다.
나보다 작은 키에 등이 굽었고, 팔다리가 새까맣다. 척 보기에도, 육체 노동이나, 야외에서 하는 일을 오래 한 인상이다.
얼굴도 까맣고, 굵은 주름이 져 있으며, 이빨이 누렇고, 비뚤고 많이 빠진 것 같다. 입도 합죽하다.
그가 나에게 말한다.
아까 그 아줌마 봤어요?
네,
내가 아침에 10시에 여기 지나가는데도 있더라고
혼자 울고 있던데, 지금까지 있어,
아무래도 마음이 아파서, 물이라도 주고 가려고,
혹시 신고 좀 해봐요,
네 저도 만나서, 뭐 좀 도와드릴까요 했더니 필요 없대요.
네 그럼 제가 대신 신고해드리죠.
핸드폰을 꺼내어 신고를 하는데 그가 다시 그녀에게 가는 지 없다.
가양대교를 거의 다 건너올 때쯤 되니 다시 그가 나타났다. 자전거를 천천히 몰고 걸어간다.
두려워서 그의 뒤에서 걷다가 답답하고, 두려워서, 그냥 재게 발걸음 재촉해서 왔다. 가양역에서 다시 그와 동선이 겹치고, 경복 고등학교 앞에서 또 겹친다.
내 머리속에는 온갖 흉악 범죄들이, 다 떠오른다. 신림동 성폭행 사건, 분당 묻지마 살인 사건, 너클, 자상, 칼, 등등,,,
사실은 나도 등이 굽었다.
사실은 나도 팔다리가 탔다.
사실은 나도, 이빨이 엉망이다.
사실은 나도 주름 투성이다.
사실은 나도 가양대교에 쭈그리고 앉은 적 있다.
사실은 나도,,,,
사실은 나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얼굴들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많은 얼굴들을 만나는가,
그리고 얼마나 큰 두려움 속에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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