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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s

에레스 뚜, 합창하다.

초 중 고 반 대항 합창 대회 했던 기억 나세요?

지나고 보니 참 좋은 활동이었어요. 

단언컨데, 합창을 한다면, 학교가 훨씬 좋은 곳이 될 거 같아요. 

 

바람에 커튼이 날리고, 해가 기울어가는  복도를 긴 그림자가 되어 걸어가면, 

이윽고 음악실

 

피아노 반주 소리, 비라도 오는 날이면 소리가 무겁게 발목까지 내려왔죠. 

 

처음에는 악보를 읽을 줄도 몰라, 한마디, 한소절씩 배워가며, 

알토, 메조 소프라노, 소프라노, 뭐 그렇게 파트도 나누고요. 

 

 

전 뭐든 중간이라 ㅋㅋ 소프라노도, 

저음이라 더더욱 매력적인 알토도 못하고 늘 메조 ㅋㅋ

 

나중에서야 남자 합창이 얼마나 멋진 지 알게 되었고요.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꼭 합창단 단원 되고 싶어요.

합창 마치고 어둑해진 교정을 나올 때 오소소한 추위, 혹은 팔다리에 감기던 초록 풀들, 

 

하나하나 맞춰 가다보면, 어느 순간 

가끔 소름이 확 돋고 울컥 하게 되요. 

 

그러니까, 천상의 목소리를 내고 들은 듯한 느낌, 

내 몸이 소리를 내면서, 아주 가볍고 숭고한 존재로 바뀌어버린 듯한 느낌. 

 

뭔가 슬프면서 아름다운 것들이 이 순간을 스쳐지나가고 있다는 기분, 

화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씩 들리는 각 사람의 목소리, 아주 작지만 천장을 뚫고 나가는 누군가의  목소리...

 

 

낮에 우연히 연대 의대 합창 동아리 "에레스투 " 듣다가 울 뻔했어요. 

 

저 아주 건조하고 밍밍한 사람인데도 ,

그들이 결코 뛰어난 것도 아닌데도, 

 

저는 노래를 음보다는 가사로 듣는 사람이라, 가사를 알고 이해해야만 빠져드는데, 

음악이 세계 공용어인지. 에레스 뚜는 그냥 듣기만 해도, 멀고 아스라하고, 슬프고 향기로우며 아름다운 숨소리였으니까요. 

조용하지만 애타는 기도였으니까요. 

숨소리는 어떤 해석도 말도 필요없으니까요. 

바램은 그냥 뜨거울 뿐이니까요. 

 

당장 어디 합창단 들어갈 수만 있다면 좋겠어요! ㅎㅎ

 

저는 불교가 기독교나 천주교만큼 대중화 되지 않은데에는 분명, 성가대가 없기 때문이라 봅니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곧 기도입니다.

노래는 곧 호흡이고,

 

합창은 함께 숨 쉬며 함께 기도하는 일이라, 모두를 살리고 한데로 가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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