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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s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

나를 위해 정찬을 차렸다.

민어를 장만했다. 물론 한여름의 생물은 아니다. 냉동했던 민어를 사다가, 비늘을 긁고, 내장을 다 빼내고,, 소금을 쳐서, 채반위에 올려서 계속 위치를 바꿔가며 꾸덕하게 말렸다. 

사람들이 분명 부서 조기일거라고, 민어가 그렇게 쌀리가 없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부서와 비슷했다. 부서 조기는 많이 먹어봤기에 그 맛을 잘 안다. 그렇지만 민어라 믿고 해보기로 했다. 

장만해봐야 냉동해서 해동한 생선이라 살이 푸석거릴 거라고 했다. 그래도 민어라 믿고 해보기로 했다. 

온 집에 비린내를 풍기며 민어를 말리고 기름 내음을 풍기며 민어를 구웠다. 

부서가 아니다.

민어인지는 잘모르겠지만 부서는 아니다. 

민어같다. 

언젠가 이정임 선생님 댁에서 민어 찌게를 대접받은 적 있다. 그때 맛과 닮았다. 순도높은 단백질의 맛, 흰살 생선이 아주 찰지고 쫄깃하게 농축되어 있는 맛. 

내 팔뚝만한 민어와, 순두부 찌게를 먹었다. 

홍진경 집안 비법이라는 갈은 돼지고기에 멸치 액젓 넣어 만든 순두부 찌게, 기름지고 감칠맛이 확돌면서 진한 순두부 찌게다. 

목욕을 하고 나서, 혼자 먹는 점심인데 거창한 셈이다. 

민어는 간이 잘되어 맛있었다. 

이건 육고기보다 더 맛나군 하면서 먹는데, 눈물이 핑 돈다. 

 

83년 데뷰 , 남궁 옥분이 흰 원피스를 입고서,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를 부른다. 쨍하니, 비음섞어 드높은 소리가, 그녀 두상을 뚫을 듯 치고 가 나는 소리다. 

박완규의 "론리 나잇" 처럼, 저 소리는 청춘의 소리라, 절대로 다시 낼 수 없는 소리며, 시원하고 어리석고, 힘차고 슬프며, 드높되 아래로 처박히며 나는 소리다. 

 

그를 생각나게 한다. 나는 그와 멀리 떨어져 있다. 이제 다시는 갈수 없다. 그 거리감이 이제는 익숙하고 평화롭다. 이제 다시는 그와 사랑할 수 없으리.

그를 33년전 만나고, 30년전 헤어지고, 26년 전 다시 만나고, 9년전 또 만나서 그래 곧 헤어졌다.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 

 

뜨거운 물에 깨끗이 목욕하며 나는 호원숙의 "그리운 곳이 생겼다"를 읽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매일 매일 눈을 뜨고 발견하며 살아야 제대로 늙을수 있겠구나 가늠하게 되었다. 아름다움의 범위가 넓어졌다. 나 역시 그리운 곳이 생겼다. 도쿄, 백두산, .....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홀로 먹으면서  남궁 옥분의 노래를 듣다가, 눈물이 핑돈다. 

 

그와 같이 먹고 싶지 않다. 

그가 생각나는 것도 아니다. 

그를 다시 만날 수도 없다.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 

 

남궁옥분은 말 그대로 국민 누이같은 가수이다. 그녀의 이름이 옥분이라서일까, 선하고 순하고, 슬프며 깊은 마음을 가진 

노래도 그녀같다. 꿈을 먹는 젊은이. 재회, 보고픈 내 친구 그대여로 시작되는 노래, 뭐더라, 

나는 재회를 좋아해서 많이 들었다. 확인해보니 하덕규, 하덕규의 가사를 난 오래도록 아꼈다. 다시 들어보니, 김승덕이 쓰고 지은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가 더 좋다. 아베 마리아도 즐겨 들었지. 

 

잊었단 말인가, 나를 

타오르던 눈동자를 

잊었단 말인가, 그대 이름을 

아름다운 기억을 ..... 

 

한 여름 서울에선 누구도 민어를 먹지 않는다. 그것 말고도 먹을 것이 흔하고, 

민어가 이제 근해에서 잡히지도 않을런지 모른다. 

가끔 나는 냉동된 민어를 싸게 사서, 해동시켜, 잘 손질해서 먹겠지.

그때도 우연히 남궁 옥분의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를 듣는다면 눈물이 핑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