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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물꽃의 전설

물꽃의 전설을 봤다.
영화관이 아닌 마포 중앙 도서관 홀이었다. 
낮에는 미세 먼지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더니, 밤에는 찬 바람이 휘몰아쳐 거리에도 강당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 추웠다. 
깜깜했고, 추웠다. 
나는 가죽 자켓을 입어서 덜덜 떨면서 봤다.
 
현순직. 1930년생, 상군 해녀,
 
오전에 "노르마"라는 오페라를 보다 가서일까, 
여사제 이야기, 그러니까, 전문직 여성 이야기로 보였다. 
고희영 감독도 그렇고, 현순직 제주 해녀 역시 전문직 여성이다. 
머리 속에는 이미  바다 지도가 새겨져 있고, 
몸으로 손으로 감으로 요령을 평생 익혀온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캄캄하고도 따뜻하면서, 춥고도 두려우면서 아낌없이 베푸는 바다 속에서 물꽃이 되었던 이야기이다. 
 
사실 그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말이 필요없다. 
그냥 바라보고, 바람 맞으면서 걸으면 된다. 
파도 위에서 반짝이는 햇살을, 
바다가 등을 뒤척일 때 용틀임하며 일어나는 햇살의 비늘을 
그냥 보기만 하면 된다. 
 
꼿꼿한 몸과
풍성한 흰 머리,
바늘에 실을 꿸 정도로 밝은 눈,
여전히 짱짱한 이
 반점으로 뒤덮였으나 건강한 얼굴
무엇보다,  
구순의 현역이신 것도,
울릉도, 통영, 부산, 강화도까지 물질을 하러 다니셨다는 것도 인상깊었고, 
"오직 나만 알아"하실 때의 자부심, 자신감이 물꽃이었다.
용왕 여왕님이셨다. 
인어 공주셨다. 
 
다른 여자들을 만나러 다니는 남편 이야기는 스쳐 지나갔다. 
세 아들을 공부시켜 결혼 시키고, 집을 마련해 주셨다고 한다. 
 
감독은 힘든 싸움을 했겠구나 싶었다.
저리 복잡한 바다, 현순직 할머니와, 해녀들, 
제주 사투리와, 바다 밑의 풍경, 
햇살과, 달과, 바람과, 별빛,
그냥 사진만 찍어도, 넘쳐나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감당할까 내내 압도당하지 않았을까, 
 
늣, 이끼가 사라지고 있다. 소라, 전복, 해삼, 멍게가 굶어죽어가고 있다고
제주도 여인의 말로,
한국어로, 
영어로 자막을 달았다. 
 
물꽃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인어 공주는 사랑에 빠져 목소리를 잃었다는데 
아니었다. 
말하고 있었다. 
내 귀가 닫혔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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