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라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유라의 몇 마디를 기억하고 있다.
한참 아이를 키우며 살림하느라, 정신없을 때, "아스티에 빌라트" 찻잔을 보고 반했단다.
굉장히 부담되는 가격이었는데, 일단 찻잔 하나 샀다고 한다.
아침 일과를 끝내고, 찻잔을 들고 앉았다고 했다.
좁은 집이라, 4인용 식탁이 겨우 들어가는 부엌에 그 찻잔을 들고 앉았다고 했다.
흰 찻잔을 들고 있는 30대 주부 주위로 가로등이 켜진 것 같았다.
연극 무대 같았다.
어떤 그림 같았다.
나는 그녀의 엄청난 그릇을 보기도 전에 질려버렸고 정녕 하나도 부럽지 않았지만,
그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30대를 버티게 해준 흰 찻잔,
그녀가 요리할 때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나물류를 무칠때 마지막에 깨를 조그만 절구에 갈아서 넣었다. 그걸 따라해보고 싶었다.
마침 내게는 울릉도에서 사온 미니 절구가 있었다.
4년전 현우가 대학 입학 후, 코로나가 오기 전, 아버지가 병상에 누우시기 전, 울릉도로 갔다.
강릉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에 내려서, 독도까지 다녀왔다.
그곳에서 나는 남편을 위한 마사지 봉이랑 작은 절구를 사들고 왔다.
주먹만한 절구에 엄지손가락만한, 절구공이가 달린, 나무로 깎은 것이었다.
울릉도 특산 나무로 깎은 거라고 들었다.
나물을 무치거나, 고기 요리, 떡국같은 요리를 할 때마다, 남편이 먹기 직전에 깨를 갈아서, 음식 위에 뿌린다.
많이 갈아두었다 쓸수 도 있지만, 조금씩 꺼내서 갈다보면 운치가 있다.
맛도 향도 비할데가 아니다.
무엇보다, 남편을 높고 귀하게 대접하는 기분이 든다.
무슨 요리건, 깨가루가 올라갈 때마다, 그가 아무 말없이 맛있게 먹는다. 김을 구워서 부수고, 깨를 갈아서 올리고,
그 깨는 사돈 어른 께서 직접 농사지어 보내신 귀한 것이다.
신혼을 깨소금 냄새 난다고들 말한다.
지금은 구닥다리 표현이라 더이상 쓰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나는 결혼하자마자 임신했고, 입덧이 굉장히 심했다.
산후 우울증도 대단했으며
그 후로도 이런저런 어려운 일이 많았다.
그래서 깨를 본 적도, 먹은 적도 없다.
볶은 깨를 울릉도산 나무 절구에 갈아서, 음식에 올린다. 고소하고 달콤하다. 모양도 어여쁘고, 영양적 균형도 맞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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