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촉도
서 정 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 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은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1943년 작이다. 벌써, 80년전에 태어난 시다. 백발이 되어 백세를 바라보는 시다.
나는 서정주의 시를 좋아했다. 일단 시인의 이름이 시인다웠다. 서정 주라니. 서정의 나라, 서정의 술, 서정의 주인 등등, 호는 더 마음에 들었다. 미당이라니 아직 집이 되지 않았다. 아름다운 집. 집에 다달으지 못했다. 그의 시는 한국적이면서도, 촌스럽지 않았다. 그의 시는 뱀같았고, 음기가 넘치는 목소리를 냈다.
귀촉도, 빨리 돌아오라는 뜻인줄 알았더니. 새 이름이기도 하고, 촉나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기도 하단다.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 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흰 옷을 입은 여인이 은빛 칼로, 검다 못해 푸른 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잘라내어 진신을 엮는 장면이 떠올랐더랬다.
남편은 까맣다 못해 푸른 기가 도는 숱많고 빳빳한 머리카락이었다. 눈도 그랬다. 검다 못해 푸른 기가 도는 고요하고, 빛나는 눈동자였자.
외모라곤 전혀 관심없는 그가 탈모 샴푸를 주문해서 감는다. 그러고도 아침마다, 한주먹만큼 머리카락이 빠진다. 이제는 모자 없이 다니기 힘들 만큼 머리숱이 휑하다. 그의 정수리를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그렇다. 나 역시, 곧 가발을 써야 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목욕을 한 후, 욕실을 치우면서, 또 한주먹 만큼의 머리카락을 건져내서, 버렸다.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 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남편은 새 구두를 검색 중이다. 나는 그에게 내 머리카락으로, 우리 머리카락으로 신을 엮어 주고 싶다.
나 역시 남편의 머리로 시은 신을 신고, 폐백 때 입은 홍상 녹의를 한채 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매일 신을 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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