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헤라자데란, 페르시아어로 도시를 뜻하는 'شهر(shahr)'와 태어남을 뜻하는 زاد(zad)'의 합성어이다.
즉, 도시에서 태어난 소녀, 세헤라자데는 재상의 장녀로 아름답고 현명하다.
왕 샤흐리야르(شهريار)는 왕비가 노예와 불륜을 저지른 것을 알자 그 둘을 죽이고 폐인이 된다. 동생 역시 똑같은 일을 겪어 함께 방황한다. 그 와중 마신이 숨겨둔 여인조차 바람을 피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여성을 불신하며 증오로 불탄다.
온 나라의 처녀를 다 불러들여서 하룻밤 보낸 후 다음날 죽이기를 1000일 동안 반복한다. 결국 전국에 처녀는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될 지경에 이른다. 이런 판국이니 백성들은 원망으로 제발 술탄이 빨리 승하하게 해달라고 알라께 빌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고관의 딸, 셰에라자드는 자청하여 왕과 하룻밤을 보낸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매일 밤 가장 재미난 부분에서 이야기를 멈추고 다음 날 밤으로 넘기기를 천일 일(千一日) 동안 반복한다.
왕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나머지 천 한번째 밤이 지나도록 셰에라자드를 죽이지 못했다. 둘이서 3년 넘게 밤마다 이야기 나누다보니, 아이도 생긴다 . 결국 왕은 여성에 대한 원한이나 증오도 다 풀어버리고 세헤라자데와 여생을 함께 한다.
천일야화에서 천일은 千日이 아니라 千一이다.
천일(1001)이라는 숫자는 당시의 아랍 문화권에서는 '끝없는', '무한한'의 뜻이었다.
처음에는 세헤라자데가 대단한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엄청난 독서가일 거라 짐작하며, 나도 그녀를 닮기를 바랬다.
결혼한 후에는 난 세헤라자데와 달리 이야기 대신 매일 밥을 짓는구나 싶었다
. 매일 밥벌이 하러 나가는구나 싶었다.
천일대신 만일, 이만일 동안 죽지 않으려면 밥을 짓고 돈을 벌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담을 넘어 도망가고 싶은 날도 있었다.
모든 것을 멈추어버리고 싶은 날도 있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그녀는 샤흐리야르 왕의 어디가 좋았을까,
배신감과 깊은 슬픔으로 잔혹해진 남자가, 이야기 듣는 모습은 어땠을까?
이야기가 지닌 망각과 치유의 힘을 그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까,
한치 앞에 죽음이 있는데, 왕에게 한 제안은 또 얼마나 담대했던가,
무시무시한 왕이, 적어도 이야기를 좋아하고 들어줄 사람이란 걸 어떻게 알았을까,
시간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보통 말로 풀어내면서, 치유가 된다고 한다.
왕은 말을 들으면서 아픔을 잊고 성장해 나가면서 어느덧 씻은 듯 낫고 이야기꾼을 아내로 맞이하는구먼
지금 우리가 맞이한 밤은 며칠째나 되는 걸까,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내 남편과 나의 깊은 슬픔과 증오와 배신감은 얼마나 희미해져 가고 있는걸까,
우리는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던가, 얼마나 담대하게 시간을 이어붙여 나가고 있는걸까,
또 다른 세헤라자데, 박경리 선생님은 "김약국네 딸들" "시장과 전장", "Q씨에게 "를 거쳐, 25년간 5부작 16권의 "토지"를 들려주셨다.
작가 박경리는 스무살에 결혼하고, 스물 넷에 남편과 사별한 후, 서른에 아들을 잃으셨다.
딸과 둘이서 원주에 터 잡고농사 지으시며, 계속해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박경리 선생님도 세헤라자데셨다. 슬픔과 불신으로 증오에 빠져 그 무엇도 믿지 못하던 우리에게.
오늘 밤은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며 시를 읽어주셨다.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싶으셨다는 세헤라자데셨다.
일 잘하는 사내
박경리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젊은 눈망울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내 대답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
왜 울었을까
홀로 살다 홀로 남은
팔십 노구의 외로운 처지
그것이 안쓰러워 울었을까
저마다 맺힌 한이 있어 울었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야,
누구나 본질을 향한 회귀본능
누구나 순리에 대한 그리움
그것 때문에 울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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