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동그란 매실이 데구르르르 굴러가며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따가운 햇살 아래 나무 그늘로 걸어가며 바람 맞을 때 온전한 행복감을 맛본다.
이걸로 충분하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은 빛나고, 나뭇잎들은 가늘게 뒤챈다. 흙과 풀은 자기만의 향을 뿜어올리고 , 나는그저 내 발로 걸어간다.
너도 이런 기쁨을 누렸는지. 올해 유월에도 역시 ,
엄마는 매일 매일 이런 지복을 누린다. 한 여름 오기 전, 습기가 몰려 오기전, 태풍과 장마, 폭염이 닥쳐 오기 전, 나는 6월의 초록을 한껏 먹는다. 나날이 무성해지는 나무를 바라보고, 장터에 나오기 시작한 완두콩과, 매실을 아이의 눈으로 쳐다본다.
눈을 감는다. 이대로 눈을 감아도 괜찮지 싶다.
눈을 다시 떴더니, 오이가 보이더라, 가늘고 짤막한 게 맛있겠다 싶은데 믿을 수 없이 싼 값에 팔더구나, 12개에 1500원,
짐도 많아고 할 일도 밀렸지만, 그냥 오이를 샀단다. 6월이니까, 초록이니까,
한 밤중에 오이소박이를 담궜지. 포도주 한잔 마셔가면서 ㅎ
굵은 소금으로 오이를 비벼서 씻고 4등분 했지. 다시 칼 집을 넣는거야, 그리고 다시 소금간을 해서 내려버 둔다.
그 사이에 소를 만들어야지.
고추가루, 마늘 , 생강, 설탕, 간장, 향신즙, 매실청, 까나리액젓, 그렇게 대충 섞는다. 손 등에 약간 올려 간을 본다. 좀 짜다 싶으면 됐다.
거기에 파와 양파는 다지고, 부추는 작게 썰어서 섞어는다.
오이가 어느 정도 절여졌다 싶으면 간수를 빼고 소를 넣는다.
오이 소박이란다. 간단하지?
지난 늦가을 담근 김장 김치가 물릴 때 시원하게 담가 먹기 좋은 여름 김치란다. 흰 쌀밥이나, 국수 한 그릇에 오이 소박이 하나만 있어도 밥상이 확 싱그러워진단다.
엄마는 뭐든 책 보고 배우는 사람이라, 예전에는 오이 소박이도, 요리책 보고 따라했더랬다. 고추가루 2큰술, 새우젓 1큰술, 설탕 한 꼬집, 등등 책에 적힌 대로 그대로 사다 하나하나 다 따라했었지.
지금은 그냥 내가 가진 신선한 재료로 간 봐가며 해, 결국 기적이란 햇살과 바람과 흙이 뒤섞여 시간 속에서 만들어내는 거니까,
어제 밤에 담근 오이 소박이를 맛보려고 새벽 5시에 일어났단다. ㅎㅎ,
아자작, 달고 시원하더라, 이건 6월의 맛이지. 3월은 딸기고, 10월은 배잖아, 11월의 맛은 굴과 고구마, 사과, 그리고 김치고 말이야, 아니구나 곶감도 있네.
6월의 맛은 아삭 아사삭, 아자작하다, 많이 먹으렴, 내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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