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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주는 요리책

현우의 museum

현우야, 
아빠는 현우 방 침대는 절대로 보내지 말라셨다.
현우, 집에 올 때 자야 한다고, 새로 사라고 했는데, 
 
엄마가 잘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 살거라면 허접한 거, 사주기 싫었거든, 
자는 데에는 좋은 거 사주고 싶었는데, 어지간 한 건 마음에 들지 않고, 
이제 침대가 없으니 현우가 더 집에 올 일이 없을 텐데, 
현우 보고 싶어 어쩌나 싶어서,
 

 

 

 

서초동 이사가면 새 침대 마련해 둘게, 
 

 


현우야, 네 침대는 보목 공방에서 히노키 나무로 맞춰 서울로 온거야, 후쿠시마 원전 터지기 전 일본에서 수입한 나무래. 
하얀 침대보는 외할머니가 보내 주신 거, 
푸른 이불 세트는 작은 이모가 맞춰 준 거
전자 레인지는 큰 이모가 서울서 10년 전 쓰다 엄마 물려 준 거, 
하얀 접시는 엄마 결혼할 때 친할머니가 주신 거야, 
로얄 덜튼 접시들은 2002년 시영 아파트 이사 와 홈플러스 문 열던 날 네가 당첨 되어 받은 거고, 
수저는 엄마 아빠가 결혼하기전 자취할 때 쓰던 30년 묵은 골동품, 
칼은 아빠가 역삼동 자취할 때 쓰시던 것,
 
분홍 컵들은 네가  대학 합격하고 너무 기뻐 기념으로 엄마가 목동 행복한 세상에서 산 것
 
흰 책상과 의자는 아빠가 우리와 헤어져 혼자 사시려고 방 얻어 들인 것들, 매트리스도, 
그런데 다시 엄마 아빠 서로 아끼며 잘 살고 있잖아, 
 
네게 간 모든 물건들이 다 의미가 있고 역사가 깊다. 
우리 가족 모두의 꿈과 희망과 의지가 다 네게로 향해 있다는 걸 나타낸다.
 
커튼 역시 엄마가 상암동 5단지 이사가 처음 네 방을 꾸며주기 위해 분당 오리고 본사까지 가서, 직접 사왔었지. 또 그 커튼은 창립자가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체 만들어 염색에서 디자인까지... 구구절절 사연도 많고, 
 
그 빨래 건조대도, 아빠가 서울대 다닐 적부터 쓴 30살 넘은 청년,
 
모든 것들이 반짝반짝 새것일때도 매력이 있다. 
그런데 엄마는 이야기꾼이잖아, 엄마가 예술가 인 거 알지. 그래서일까,
엄마는 네 방이 이야기, 스토리, 사연, 역사도 가득한 게 되게 자랑스럽다. 남들은 전혀 모르고 관심조차 없겠지만, 엄마는 네게 몇대째 내려오는 물건을 소중히 요긴하게 쓰는 게, 유서깊은 가문의 자랑스럽고 귀한 후손같아 더더욱 좋다.
 
엄마는 이화 대학 다닐 적에 좋은  집안의 부유한 친구들 사이에서 많이 부러웠단다. 기도 죽고, 그 애들이 엄마가 쓰던, 할머니가 주신, 이모에게 얻어온 물건이라며 아껴쓰던 모습이 되게 보기 좋더라고,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취향이랄까, 기품, 자신의 뿌리에 대한 긍지가 엿보여서, 
 
이 모든 것 그냥 엄마의 생각일 뿐, 너는 아닐 수 있고 네게 강요하고픈 마음 전혀 없지만, 
 
네 방을 만들면서 엄마가 느꼈던 마음이다. 
넌 피아노만 있으면 완벽하겠다고 했지. 
 
그래, 맞아, 엄마는 네가 음악을 사랑하는 멋진 남자로 성장해서  정말 자랑스럽다.
남자가, 특히 의과대학 갈 정도로 이지적인 남자가 피아노를 수준급으로 친다는 건, 악기를 사랑한다는 건, 그의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윤택한지 보여주는 거니까, 그가 균형잡힌 삶을 누릴 수 있는 능력도 여유도 있다는 거니까, 
 
네 방에서 네가 평생 갈고 닦은 피아노 소리까지 울려 퍼진다면 그 방은 정말로, museum이다, 뮤즈가 살고 있는 집이다. 그렇지? 
 
그러니까, 네가 사는 그 집은  castle in air  이자  museum이다.
너는 이미 하늘 위에 집을 지어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 너는 사람의 몸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마음과 영혼에서 나는 소리를 들고 네 소리로 치유하는 사람이 사는  museum 에 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네가 그리 좋은 집에 사니, 엄마 아빠가 단 둘이 살 서초 푸르지오 써밋은 탐내지 마시오, ㅎ
 
사랑한다. 
 
22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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